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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

남을 비판하지 말자

과정 2017. 10. 31. 09:56


 

'남을 비판하지 말자'

 

 

벌써 제목부터 게이들에게 안 어울리지?

 

밤에 누워서 '인간관계론'이란 책을 재정독하다가 요즘 넷상에서 고소니 뭐니 하잖아?

 

고로 게이들이 알아두면 유용할 사회 지침 법(책 내용)을 간추려서 게이들에게 전하려고 해!

 

내가 쓰는 내용은 일부분일 뿐이고, 더 유용한 내용이 책에 쓰여있어.

 

꼭 한 번 읽어봐라ㅋㅋㅋ 살면서 도움되는 게 많을 거야.

 

 

 


내가 0랩인 이유는 얼굴 인증 글로 일베 가는 게이들이 많아서 나도 짤게에 얼굴 인증 글을 장난식으로 많이 올렸는데 민주화만 존나 주더라

어느 날 댓글을 쓰려고 보니 스팸방지 입력창이..

 

 

 


각설하고

스압이더라도 진짜 한 번 시간 투자해서 읽어보길 권할게.

깨닫는 게 많을 거라고 믿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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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을 얻고 싶으면 벌통을 걷어차지 마라'

 

말 그대로. 본 글과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소제목이지.

 

1931년 5월 7일, 뉴욕 시에서 전례를 찾아볼 수 없이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범인 검거 작전이 펼쳐지고 있었어.

긴 수사 끝에 총잡이 살인범, 일명 '쌍권총' 크로올리가 웨스트 엔드에비뉴에 있는 정부의 아파트에 숨어 있다가

경찰들에게 포위를 당해.

 

수십 차례의 총격이 오간 후,

크로올리가 체포되었을 때, 당시 뉴욕 경찰 국장직을 맡고 있던 멀루니는 크로올리가 뉴욕 역사상 가장 위험한 범죄자 중 한 명이라고 발표를 해.

 

국장은 '그는 사소한 일로도 사람을 죽일 것'이라고 말했지.

 

그러나 크로올리는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을까?

 

경찰이 그가 숨어있던 아파트에 사격을 가하는 동안 그는 "관계자 여러분게"로 시작하는 편지를 썼기 때문에 우리는 그 점에 대해 알 수 있어.

이 편지에서 그는 말했지.

 

"내 안에는 지친 마음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선한 마음이다. 그 마음은 어느 누구도 해치지 않는다." (연쇄살인마의 합리화 ㅍㅌㅊ? 후에 범죄자들의 이런 합리화 대목이 많이 나오는데 잘 기억해 둬.)

 

이 사건이 발생하기 며칠 전, 크로올리는 한적한 시골 길에 차를 세우고 애인과 CARSEX를 즐기고 있었지.

그런데 갑자기 경찰이 주차된 그의 차로 다가가

 

"면허증을 제시해 주십시오."

 

이 한마디로, 크로올리는 한마디의 대꾸도 하지 않은 채 경찰에게 총을 마구 쏘아 댔어.

 

 

그렇게 잔인한 그가 '내 안에는 지친 마음이 있다. 그러나 그 것은 선한 마음이다. 그 마음은 어느 누구도 해치지 않는다.' 라는 말을 한 거야

 

전형적인 사이코패스지?

당연히 크로올리는 전기충격 사형을 선고 받아.

 

그가 뉴욕에 위치한 싱싱교도 소내에 있는 사형수 감방에 도착했을 때 그는 '이것이 내가 받아야 하는 벌이란 말인가?' 라고 말했을까?

아니, 그는 "이것이 나 자신을 지킨 대가다"라고 말했어. 실제로.

 

 

 

이 긴 이야기의 요점은 이거야.

''쌍권총' 크로올리는 결코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지 않았다"

 

 

 

과연 이것이 범죄자들 사이에서 이례적인 행동일까?

 

 

만약 그렇게 생각한다면 이것을 한 번 들어봐.

 

"나는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좋은 시간을 갖도록 돕고, 내 인생 최고의 해를 보냈다. 그런데 내게 돌아온 것이라고는 비난과 범죄자라는 낙인뿐이다."

 

이것은 알 카포네가 한 말이야.

미국에서 가장 악명 높은 공공의적이자 시카고의 암흑가를 주릅잡던 사악한 갱단 두목인 바로 그 알 카포네.

 

실제로 그는 자신을 독지가(도탑고 친절한 마음을 가진 사람)라고 여겼어.

다만 인정받지 못하고 오해받고 있는 독지가라고 생각했지.

 

 

그리고 뉴워크에서 발발한 갱간의 총격전에서 무너진 더치 슐츠 역시 마찬가지였어.

뉴욕에서 가장 악명 높은 갱(gang) 중의 한 명인 그는 신문 인터뷰에서 자신은 독지가라고 말했지.

그리고 그는 그것이 사실이라고 생각했어. 아까 크로올리와 같은 자기합리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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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주제에 대해 싱싱 교도소의 교도관 워든 로즈는 이런 말을 하지.

 

"이곳 싱싱 교도소에서 수감 중인 범죄자들 중에 자기 스스로를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이는 거의 없습니다.

그들도 당신과 나와 같은 인간일 뿐입니다.

그들이 왜 금고를 털 수밖에 없었는지 혹은 왜 방아쇠를 당길 수밖에 없었는지 변명할 수 있습니다.

그들 대부분은 논리적이든 비논리적이든 그럴싸한 변명으로 자신들을 합리화시켜 자신들이 저지른 반사회적 행동들을 정당화하려하고, 결과적으로 자신들은 감옥에 투옥될 이유가 없다고 강하게 주장합니다."

 

알 카포네, '쌍권총' 크로올리, 더치 슐츠, 감옥벽 뒤편에 절망적인 수감자들이 스스로 아무것도 잘못한 것이 없다고 한다면 게이들과 내가 알고 지내는 주변 사람들은 어떨까?

 

이미 세상을 떠난 존 워너메이커는 이런 고백을 했대.

 

"나는 30년 전에 상대를 꾸짖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라는 걸 알았다.

나는 하나님께서 지적 능력을 모두에게 공평하게 나눠주지 않으신 것에 대해 애태우기보다는 내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으려고 무척 애를 썼다."

 

워너메이커는 이 교훈을 일찌감치 깨달았어.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30여 년간 뚜렷하게 알 수 없는 세상에서 계속 실수를 저지르고 나서야 사람들이란 아무리 큰 잘못을 저지르더라도 100명 중 99명은 자신을 비난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

 

항상 알아두자.

비판은 쓸모가 없다. 라는걸


이는 사람을 방어적으로 만들며 자신을 정당화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게 할 뿐이야.


비판은 위험하지.


이는 사람의 귀중한 긍지에 상처를 주고, 자신의 진가를 상하게 하여 적의를 불러 일으키게 할 뿐이야.


독일 군대는 병사들이 불만이 생겨도 그 즉시 불만을 보고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불만이 있어도 일단 하룻밤을 보내며 열을 식혀야 했어


만약 불만이 있는 즉시 보고하면 그는 처벌 받았지.


불변의 진리로써, 문명사회라면 이와 같은 법이 있어야만 해.


짜증 섞인 목소리로 다그치는 부모님들이나 바가지를 긁는 아내들, 꾸짖는 고용주들 그리고 이들과 마찬가지로 타인의 흠을 잡는데 급급한 매우 불쾌한 모든 사람들에 관한 법 말이야.


기나긴 역사속에서 타인의 잘못을 지적하는 비판은 쓸모없는 행동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많은 전례들을 볼 수 있어.


그 전례들 중에서도 시어도어 루즈벨트와 태프트 대통령 사이의 유명한 언쟁을 살펴보자.


이 언쟁으로 말미암아 공화당은 분열되었고 민주동 후보인 우드로 월슨이 대통령으로 당선되어 미국이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게 되면서 세계 역사의 흐름을 바꿔놓았지


흥미롭지?

한 번 봐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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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도어 루즈벨트는 1908년 대통령직에서 물러나면서 태프트를 차기 대통령으로 지지했고, 태프트는 대통령으로 당선되었어.

그다음 루즈벨트는 사자 사냥을 하기 위해 아프리카로 떠났지.


아프리카에서 돌아온 그는 크게 격노했어.


왜일까?


루즈벨트는 자신이 추진하던 방향과는 정 반대인 보수적 성향의 정책을 자신이 대통령으로 올려놓은 태프트가 펴고 있었기 때문이지. 역대급 통수 ㅍㅌㅊ?

 

그로인해 루즈벨트는 크게 분개해 그를 규탄하고 차기 대통령 후보 지명권을 얻기 위해 불 무스 당(진보당의 별칭)을 조직하게 되자 공화당은 분열 위기에 처해.


태프트는 큰 위기를 맞게되었지.


이런 위기 속에서 치러진 선거에서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와 그가 소속된 공화당은 버몬트와 유타 단 2개의 주에서만 승리를 거뒀어.


공화당 창당 이래 최대의 참패이지ㅋㅋㅋㅋㅋㅋㅋ (통수의 대가는 결국 자신에게 돌아온다)

 

이에 대해 루즈벨트는 태프트에게 책임을 물었어.


그렇다면 태프트 대통령은 자신을 책망했을까?


눈치챈 일게이 많겠지?

 

답은 물~~~론 아냐.


그는 심지어 눈물을 머금고 이렇게 말했어.

" 그 당시 나는 그렇게 하는 것 말고는 다른 수가 없었네."

 

누가 비난 받아 마땅한가? 루즈벨트? 아니면 태프트? 솔직히 모르겠어.

그리고 알고 싶지도 않지. 우리는.

 

다만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루즈벨트가 한 모든 비난은 태프트로 하여금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게 만들지 못했다는 거야.

또한 공화당 최대의 참패. 득은 없지.

 

그의 비난은 태프트가 자신을 정당화하고 눈물을 글썽이며 '당신에는 그럴 수밖에 없었네' 라고 되풀이하게 만들 뿐이었지...

 

또 다른 경우로,

 

이번에는 티포트 돔 유전 스캔들을 살펴보자.

 

이 스캔들을 아는 게이가 있을까? 기대는 안할게.

 

이 일은 몇 년 동안이나 신문지면에서 파장을 일으켰어.

 

또한 온 나라를 뒤흔들었지. 세상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이런 사건은 미국 역사상 유례없는 일이었어.

 

이 스캔들의 전모를 과감없이 살펴보자!

 

하딩 행정부에서 내무장관직에 있던 앨버트 펄은 엘크 힐과 티포트 돔에 있는 정부 소유의 유전 지대 임대에 대한 권한을 위임 받았어.

 

그 유전 지대는 앞으로 해군에서 사용할 목적 때문에 따로 떼어 둔 지역이었지. 그렇다면 펄 장관이 이 지역에 경쟁 입찰을 해락했을까?

답은 아니야.

 

그는 허락하지 않았어. 그는 자신의 친구인 에드워드 L. 도헤니에게 아주 유리한 조건으로 일체의 입찰 과정 없이 건네주었어.

 

그렇다면 도헤니는 그 대가로 무엇을 주었을까?

 

그는 펄 장관에게 '대여금'이라는 명목으로 10만 달러를 건네주었지.

서로 짜고 윈윈한거야 부정부패비리 코쟁이들.

 

그런 뒤, 펄 장관은 위압적인 자세로 해병대에 엘크 힐에 인접한 곳에서 석유를 채굴 중이던 군소 유전업자들을 쫓아내기 위해 출동 명령을 내려.

 

결국 총검에 의해 자신들의 유전 지대에서 쫓겨난 군소 유전 업자들은 법정으로 달려가지.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답은 '정의는 승리한다'

 

마침내 10만 달러 티포트 돔 스캔들이 만천하에 드러났어.

 

이 사건은 악취가 너무 지독해서 하딩 행정부이 붕괴를 초래했고, 온 나라를 불쾌하게 만들며 공화당을 붕괴 위협에 빠뜨렸어.

그리고 주동자인 앨버트 B. 펄 전 장관은 투옥되었지. 그는 공직자로서 보기 드물게 중형을 선고받았다.

 

근데 여기서.. 과연 그는 자신의 죄를 뉘우쳤을까?

절대 그런 일은 없었어.

 

이 일이 있고 몇 년 뒤 허버트 후버 대통령은 어느 연설에서 하딩 대통령의 죽음은 친구에게 배신을 당해서 생긴 정신적 불안과 걱정 때문이었다고

말한 적이 있지.

정리해 보자면 하딩과 친한 친구인 앨버트 펄 장관이 부패를 저질러 친구의 정부를 붕괴시킨 거잖아?

 

이에 대해 펄 부인은 그 이야기를 듣고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눈물을 흘리며 주먹을 꽉 켜지고 이렇게 외쳐

 

"뭐! 하딩이 펄에게 배신을 당했다고? 말도 안돼! 내 남편은 어느 누구하나 배신한 적이 없어. 이 집을 황금으로 가득 채워준다해도 남편이 나쁜 짓을 하게 꾀어낼 수는 없어. 남편이야말로 배신을 당하고 잔혹한 이에게 끌려가 고통을 받았단 말이야."

 

 

뭐 이젠 익숙하지?

 

인간은 누구나 이렇지.

 

인간 본성은 아무리 나쁜 짓을 저지르더라도 남을 탓하지 자신을 탓하진 않잖아. 모두가 그래. 지금 글을 쓰고 있는 나도. 읽고있는 게이들도.

 

그러니까 내일 읽고 있는 너나 내가 누군가를 비난하고 싶어지면 알 카포네, '쌍권총' 크로올리, 앨버트 펄을 떠올리자.

 

비난은 집으로 돌아오는 비둘기와 같다는 것을 명심하자.

 

그리고 우리가 바로 잡아주려고 하거나 비난하고 싶은 사람은 아마도 자신을 정당화하려 할 것이고 도리어 우리를 비난할 것임을 명심하자.

 

아니면 점잖은 태프트처럼 이렇게 말할 뿐이야.

 

"당시에는 그럴 수 밖에 없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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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침대에 누워 죽은 링컨)

 

1865년 4월 15일 토요일 아침,

에이브러햄 링컨은 부스에서 저격당한 포드 극장 바로 길 건너에 있는 싸구려 학숙집 문간방에서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어.

 

링컨이 죽어갈 때 스탠든 국방 장관은 이렇게 말했다고 해.

 

"세상에서 가장 완벽하게 사람을 통솔한 지도자가 누워 있다."


사람들 다루는 것에 관한 링컨의 성공 비결은 무엇일까?

아는 게이들도 있겠지만 그는 절대 남을 비난하거나 비판하지 않았어.


젊은 시절 그는 비난하기를 즐겼을까? 물론이야. 우리와 같은 인간이거든. 심지어 상대방을 조롱하는 것조차 자신의 취미로 삼았었지.


그러다 한번은 비난의 도가 지나쳐서 말썽을 일으킨 적도 있었어.


1842년 가을, 링컨은 허영심이 강하고 싸우기 좋아하는 제임스 쉴즈라는 아일랜드 정치가를 조롱했어.

링컨은 <스프링필드 저널>에 익명의 편지를 보내 그를 호되게 풍자했지.


사람들은 그 기사를 보고 폭소를 금치 못했대.


예민하고 자존심이 강한 쉴즈는 화가 났고, 편지를 쓴 것이 링컨임을 알고는 말에 올라타 링컨을 쫓아가 결투를 신청했어.


링컨이 어떻게 했을까? 그는 원하진 않았지만 피할 수는 없었지.

왜냐 자신의 명예가 달린 일이거든.


링컨은 무기를 선택할 수 있었어.


그는 팔이 길었기 때문에 기병대의 장검을 골랐고, 웨스트포인트(미 육군 사관학교) 졸업생에게 검술 교습을 받았어.


그리고 약속한 결전의 날, 링컨과 쉴즈가 미시시피 강의 모래사장에서 만나 목숨을 건 결투를 시작하려는 순간 양측 입회인들의 7중재로 결투는 중단 되었지.


만약 여기서 링컨이 죽거나 불구라도 되었으면 지금쯤 미국의 역사는 어떻게 바꼈을까?


각설하고 이 일은 링컨 생애에 있어 개인적으로 가장 소름끼치는 사건이었지.


이일로 그는 사람을 다루는 기술에 대한 귀중한 교훈을 얻었어. 그 뒤로 그는 두 번 다시 상대를 모욕하는 편지를 쓰지 않았고, 어느 누구도 조롱하지 않았지.

또한 어떤 일로도 타인을 비난하지 않았어.

 


미국 남북전쟁 당시 링컨은 포토맥 지구의 육군 사령관으로 새로운 장군을 임명해야만 했는데,

임명되었던 역대 장군들이 비참판 패배를 거듭해 링컨을 절망의 늪에 빠뜨렸지.


북부 측 국민들은 이 무능한 장군들을 맹렬히 비난했지만 링컨은 '구에게도 악의를 품지 말고 사랑을 배풀자'  뜻을 품고, 침묵을 지켰어.

그가 좋아하는 인용구 중 하나는 '타인을 비판하지 말라. 그러면 너도 비판받지 않을 것이다. ' 였지.


그리고 자신의 아내와 다른 이들이 남부 사람들에 대해 나쁘게 이야기할 때도 링컨은

"그들을 비난하지 마세요. 우리도 그들과 같은 상황에 있었다면 그렇게 행동했을지 모르니까요" 라고 답했다해.


그러나 언제든 타인을 비난할 기회가 끊임없이 있었던 사람이 있다고 한다면, 그 사람은 아마 링컨일 거야.


예를 하나 들어보자. 게티스버그 전투(남군의 패배로 남북전쟁의 전환점이 된 전투)는 1863년 7월 1일부터 3일까지 3일에 걸쳐 벌어졌어.


후에 여기서 링컨이 역사에 남을 중요한 연설을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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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가호 아래 이 나라는 새로운 자유의 탄생을 보게 될 것이며, 인민의, 인민에 의한, 인민을 위한 정부는 이 지상에서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진짜 유명한 연설이야. 모르는 게이들이 있을까 싶다.


글의 주제에서 좀 벗어났는데 각설하고..

 

 

7월 4일 밤, 남부의 장군인 리 장군은 폭풍우가 몰려오자 남쪽으로 퇴각하기 시작했어. (패주)

장군이 그의 패잔병들과 포토맥에 이르렀을 때, 그는 앞으로는 물이 불어나서 건널 수 없는 강을 마주하게 되었고

뒤로는 승리를 거둔 북부의 군대를 맞닥뜨리게 되었지.


그는 덫에 걸린 것이나 마찬가지였고, 빠져나갈 구멍이 없었어.

 

링컨은 이 사실을 알고 이번에야말로 리장군의 군대를 생포해 당장 전쟁을 끝낼 수 있는 하늘이 주신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하지.


그래서 링컨은 희망에 부풀어 미드 장군에게 작전 회의를 하지말고 당장 리 장군을 공격하라고 명령했어.


링컨은 자신의 명령을 전문으로 보내고 미드에게 즉각적인 공격 개시를 요구하는 특사까지 파견했지.


그러면 미드 장군은 어떻게 했을까? 그는 그가 받은 명령과는 정반대로 실행에 옮겼어.


그는 망설였어. 그리고 시간을 지체시키지. 그리고 온갖 변명을 전보로 보내.


결국 강물은 줄어들었고, 리 장군은 자신의 병력과 함께 포토맥 강을 건너 무사히 퇴각할 수 있었지.


링컨은 격분했고 당시 그 자리에 함께 있었던 아들 로버츠에게 소리쳤어.

 

"이런!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리 장군은 이제 다 잡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는데. 손만 뻗으면 되는데! 내가 아무리 명령하고 조치를 취해도 군대를 움직일 수가 없다니. 그 상황이라면 어떤 장군이든 리 장군의 군대를 이겼을 것이다. 심지어 장군이 아닌 내가 그 자리에 있었어도 승리했을 것인데.."


엄청난 실망감에 휩싸인 링컨은 자리에 앉아 미드 장군에게 편지를 썼어.

 

여기서 기억해야 할 것은, 그의 일생에서 링컨의 말투가 극도로 온건하고 절제됐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1863년에 링컨이 쓴 이 편지는 심한 질책에 해당해.

 

 

친애하는 장군께
나는 리 장군의 탈출로 인한 이 불행이 얼마나 중대한 사안인지 장군께서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 못한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리 장군은 우리 군이 우리의 지난 승전들을 미루어 볼 때, 전쟁을 끝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전쟁은 언제 끝날지 알 수 없게 됐습니다.

장군께서는 지난 월요일 리 장군에게 제대로 된 공격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적군이 강 건너 남쪽에 더 근접한 상황에서 어떻게 작전을 제대로 수행해낼 수 있겠습니까? 더구나 장군이 월요일에 가지고 있던 병력의 3분의 2밖에는 쓰지 못할 텐데 말입니다.

그런 전투를 기대하기란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저로써는 장군께서 전투를 제대로 이끌어 가실지 염려됩니다.

장군께서는 본인의 둘도 없는 기회를 놓치고 말았습니다.

그 일로 인해 저는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큰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여기 까지가 링컨의 편지 내용이야.

미드 장군은 이 편지를 읽고 어떻게 했을까?


미드는 이 편지를 읽지 않았어. 아니 못했지. 링컨이 편지를 부치지 않았기 때문이야.

편지는 링컨 사후 그의 서류함에서 발견되었지..


이건 그저 추측에 불과하지만, 이 편지를 쓰고 난 뒤 링컨은 창밖을 내다보며 혼잣말을 중얼거렸을 거 같에.


"잠깐, 이렇게 서두르면 안 돼. 백악관에 앉아서 미드 장군에게 공격 명령을 내리는 건 쉬운 일이야. 하지만 내가 게티스버그에서 미드 장군처럼 엄청난 피를 목격하고, 부상자와 죽어가는 병사의 끔찍한 비명소리와 신음 소리를 들었다면, 아마 나도 쉽게 공격하지 못했겠지. 그리고 내가 미드 장군처럼 소심한 성격이라면 나도 그랬을 것이다. 내가 이 편지를 보내면 기분이야 좀 나아지겠지만, 미드 장군 입장에서는 자신을 정당화하기 위해 애쓸 것이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 하기 위해 나를 비난하겠지. 이는 악감정을 불러 일으키고, 사령관으로서 장군의 직무수행에 악영향을 미쳐, 장군을 군에서 퇴역하게 만들지도 몰라."


그리하여 링컨은 편지를 부치지 않았던 것이지.


그는 날카로운 비판과 책망이 대부분 쓸모없다는 것을 쓰라린 경험을 통해 알고 있었으니깐.


시어도어 루즈벨트가 대통령 재임기간에 난관에 부딪힐 때면 뒤로 기대어 백악관에 걸려 있는 링컨 초상화를 보면서 스스로 이렇게 물었다고 해.


"링컨이 지금 내 입장이라면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을까?"

 

다음에 누군가를 심하게 비판하고 싶어지면, 링컨을 떠올리자!

 

'링컨이 지금 내 입장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누군가를 변화시키고, 바르게 개선시키고 싶어? 좋아, 멋진 생각이야.

그런데 자기 자신부터 변화시키는 건 어떨까? 전적으로 이기적인 관점에서 볼 때,

남을 개선시키는 것보다 자기 자신을 개선시키는 것이 더 유익해. 그리고 그편이 훨씬 덜 위험하지


브라우닝은 "사람은 자기 자신과의 싸움을 시작했을 때 가치 있는 사람이 된다"고 말했어.


자신을 완벽하게 만드는 데에는 연초부터 시작해도 크리스마스까지 걸릴지 모르지.

아마 꽤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까?


그렇게 완벽해지면 연말 연휴를 잘 쉬고, 새해부터는 타인을 변화시키고 비판할 수 있을지도 몰라.


그러나 먼저 자신을 완성해.


"너희 집 현관은 치우지 않은 채로, 옆 집 지붕 위에 쌓인 눈을 욕하지 마라" 고 공자는 말했어.


만약 우리가 사소한 것이라도 아픈 곳을 찌르는 비판을 하면 그 비판에 의해 일어난 분노는 수십 년간 사무쳐 죽을 때까지 계속 될 거야.

비판이 정당한가 아닌가는 중요하지 않아.


사람을 상대할 때, 우리가 논리의 동물을 상대하는 것이 아님을 명심하자.

우리는 감정의 동물을 상대하고 있고, 그들은 편견으로 가득 차 있으며 자존심과 허영심에 의해 자극 받아 행동할 뿐이야.


젊은 시절 수완이 서툴던 벤자민 프랭클린은 뛰어난 외교적 수완과 사람을 상대하는 능숙한 기술을 갖춰 프랑스 주재 미국 대사가 되었어.

그의 성공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저는 누구에게도 악평을 하지 않습니다. 제가 아는 모든 이의 장점에 대해 말할 뿐입니다." 라고 말했데.

 

바보들은 비판하고, 힐난하고, 불평할 수 있어.

그리고 실제로 거의 모든 바보들은 그렇게 행동하지.


그러나 타인을 이해하고 용서하는 것은 고결한 인격과 자제력을 지닌 사람만이 할 수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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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임은 범인(凡人)을 대하는 태도에서 위대함을 보여준다" 칼라인을 말했어.


사람을 비판하는 대신, 이해하려고 노력하자.


그들이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생각해보자.


그편이 비판하는 것보다 더 유익하고 흥미롭다.


그리고 이렇게 하는 것은 공감, 관용, 친절을 낳는다.


'모든것을 알게 되면 모든 것을 용서하게 된다'

 

"하나님도 사람이 죽기 전까지는 심판하지 아니한다" 라는 존슨 박사의 말처럼,

 

신도 살아 있는 자를 심판하지 않으신데 왜 우리는 심판하려 한단 말인가.

 

 

 

 

 

 

 

자 이제 끝이야.

 

신선하지? 남을 비판하지 말라니. 우리가 일상에서 해오던 일인데..

이 글을 읽고 생각해 낼 때 만큼은 실천해 보는건 어떨까?

 

 

 

2줄 요약

1. 몇몇 위인들은 남을 비판하지 않는 것이 사람을 다루는 기술이라 생각했다.

2. 남을 비판하지 말자. 비판하기 전에 자신이 완벽한 사람인지 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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