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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초 유럽은 그야말로 과학혁명이 일어나던 시기였다. 전기전자공학 분야, 화공분야와 같은 실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공학계열 뿐만아니라
자연과학, 즉 물리 화학 생물 지구과학, 천문학 등도 이 시기에 꽃을 피웠다.
맥스웰이 그동안 흩어져있던 전자계에 대한 공식을 하나로 완성한 후, 본격적으로 빛의 파동성과 입자성에 대한 논쟁이 시작되면서 그 열기는 더욱 뜨거워졌다.
이 시기 물리학에서는 빛 못지않게 '전자'라는 녀석도 매우 중요했다.
전자는 'e'라는 기본 전하를 가진 쪼그만 알갱이인데 이새끼가 존나 특이했기 때문이다. 이놈이 '축퇴'가 되면(밑에서 자세히 다룸) 우주에서
아주 신기한 일이 발생하기도 했고, 빛과 상호작용하여 에너지를 토해내거나 빨아들이기도 했으며
심지어는 주변 환경에 따라 입자의 성질을 지니거나 파동의 성질을 지니는 이중성도 갖고 있었다.
지금부터 다룰 내용은 이 신기한 전자의 특성 중 단연 손에 꼽히는 '축퇴'에 대해 알아볼 것이다.
최대한 말로 풀어 쓸 예정인데 그래도 어려울 것 같으니 참고하길 바란다.
1. 입자의 기본적인 분류
전자의 축퇴에 대해 알아보기 전에 먼저 현대물리학에서는 입자를 어떻게 분류하는지 간략하게 알아보자.
자연에 존재하는 입자는 크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 바로 '보존'과 '페르미온'인데,
보존과 페르미온을 나누는 기준은 우리에게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그냥 그렇게 분류하는구나 하고 넘어가자.
보존은 여러 괴상한 이름을 가진 입자들(글루온, W보존, Z보존 등..)이 존재한다. 개중에는 광자도 포함되어 있는데, 이들의 공통적인 특징이라면
이 입자들 모두 '힘'을 매개한다는 것이다.
보존에 속하지 않은 나머지가 페르미온인데, 이 페르미온은 자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녀석들이다.
예컨데 전자나 쿼크이며, 쿼크들이 적절하게 합쳐져서 만들어진 중성자 양성자도 페르미온이라고 보면 된다.
2. 페르미온의 성질
전자가 속하지 않은 보존은 우리 관심 밖이니 이정도만 알아두기로 하고, 페르미온을 좀 더 뜯어보자.
이 페르미온은 한 가지 신기한 성질을 지니고 있다.
니네 파울리의 배타원리에 대해 들어본 적 있냐?
파울리라는 아저씨가 발견한 원리인데, 그 아저씨가 말한 것을 번역해서 적어보자면 대충 이럼
동일한 모멘텀을 가진 페르미온은 스핀 업, 스핀 다운 상태로 두 개만 존재한다.
한국말인데 뭔 소린지 모르는 애들이 허다할 거라고 생각한다.
음 쉽게 말하면 내가 오늘 여자좀 꼬시려고 간만에 멋드러지게 차려입고 나왔다고 생각하자.
방구석에서 부랄벅벅 긁으며 난 언제 여친생길까 하며 딸이나 치던 애들이 이렇게 멋드러지게 차려입으니 아다폭격기가 된 것 같겠지?
자신감이 가득한 상태로 외출을 했다.
근데 밖에서 나랑 헤어스타일부터 신발까지 진짜 똑같은 코디를 한 새끼가 반대편에서 걸어오고 있어. 그럼 니들은 무슨 생각을 하냐?
아니 무슨 생각을 하기 보다는 뭔가 좀 불편하지 않냐? 괜히 그냥 피하고 싶고..
이런 느낌을 페르미온 새끼들도 가진다 이거임. 우리에게 패션이라는 것이 그들에게는 운동량이라는 거지.
그래서 같은 운동량(사람으로 치면 같은 패션)을 가진 페르미온은 딱! 두 개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하나는 스핀 업, 하나는 스핀 다운.
이것을 가리켜 파울리의 배타원리(Pauli's Exclusion Principle)라고 한다.
3. 전자 덩어리들을 한 곳에 모아두면?
그러면 이러한 페르미온(이하 전자)들을 한 곳에 싸그리 모아두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
뭐 처음에는 어떤놈은 이러한 모멘텀을 가질테고 어떤놈은 저러한 모멘텀을 가지고선 분포를 하겠지.
큰 문제는 없어보인다.
자 이제 여기서 이새끼들을 좀 더 가까이 붙여보자.
가까이 붙여놨지만 그래도 뭐 아직은 살 만해
더 가까이 붙여놓으면?
아 좀 그런데
더 붙여 놓으면?
아 그만
더 붙여놓으면?
제발 그만해!!!
전자새끼들이 빡쳐서 반발을 하기 시작한다.(전자기력) 하지만 우리는 굴하지 않는다. 그냥 계속 밀어붙이는거야.
같은 공간에 존재하는 전자새끼들이 많아짐에 따라 좁아서 짜증나기도 하지만 전자들이 더 좆같아진 이유는
비슷한 모멘텀을 가진 놈들이 서로서로 눈에 띄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아 저새끼 보니깐 괜히 또 불편해지는데? 하지만 아직까지는 두 개밖에 안 보이니 그래도 쪽팔림을 감수하고 존재할 수는 있다.
근데 더 가까이 붙여놔서 한 전자가 같은 모멘텀을 가진 다른 두 전자를 봤다고 치자. (같은 모멘텀을 가진 놈이 총 세 놈이 있다는 거임)
그러면 이새끼들은 아 내가 멋드러지게 차려입고 나온 이 패션은 결국 클론 패션이구나 하고 좌절을 하지만
오히려 이들은 현실을 직시하면서 지 스스로 패션(모멘텀)을 바꾸기 시작한다.
즉 같은 모멘텀을 가진 놈들이 세 놈이상 모이게 되면 필연적으로 한 놈은 모멘텀이 스스로(거의 반 강제적으로) 바뀐다는거야.
근데 그 모멘텀을 가진놈만 그렇게 될까?
좁은 공간에 밀도가 존나 높아지면 다른 모멘텀을 가진 전자새끼들도 비슷한 현상을 겪기 때문에
모멘텀을 스스로 바꾸기로 마음먹은 새끼는 주변에 다른놈들이 가진 모멘텀으로 바꿀 수 없다는거임.
그래서 이놈이 택한 대안은 전혀 새로운 모멘텀을 가지도록 하는거다.
사람으로 치면 갑자기 옷을 찢거나 상처를 내어 자기 딴에는 존나 개성있어 보인다고 착각하게 된다는 거지.
전자의 세계에서 이러한 현상은 보통 모멘텀이 커지는 쪽으로 발현이 된다.
즉 파울리 배타원리로 튕겨져 나간 전자들은 모멘텀이 조오온나게 커지는 것이다.
이렇게 모든 모멘텀 자리에 전자들이 2개씩 꽉꽉 들어찬 상태를 가리켜 '축퇴'되었다고 말한다.
축퇴된 전자는 한 모멘텀 준위에 2개밖에 있을 수 없다.
위에서 설명한 축퇴방식은 '밀도'라는 변수를 증가시켜 감으로써 축퇴를 시킨거다.
밀도 말고 온도를 낮춰서 축퇴를 하는 방법도 존재한다.
화학자들은 보통 온도를 낮춰서 축퇴시키지만 물리학자들은 밀도를 높여 축퇴시킨다고 한다.
자 이제 전자들이 축퇴되었을 때에는 어떠한 현상이 일어나는지 보도록 하자.
우선 자기 옷을 찢어서 개성있게 만든 그 사람은 남들과는 다른 전혀 새로운 코디를 창조해낸 것이기 때문에 자만심에 가득차게 된다.
그래서 일부러 자신을 포장하고 괜히 자신감이 붙어서 이리저리 대쉬를 해보기도 한다.
전자도 마찬가지. 전혀 새로운 모멘텀을 가진 새끼는 자신이 이전에 가졌던 모멘텀과는 비교할 수 없을정도로 크기 때문에 주변을 방방 뛰어다니게 된다.
전자가 주변을 방방 뛰어다니게 되면 '압력'이 증가하게 되는데, 이는 압력이 단위면적 당 입자의 충돌횟수로 정의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때문에 같은 개수를 지닌 전자 덩어리라고 하더라도 축퇴된 전자들과 그렇지 않은 전자들이 가하는 압력은 서로 다르다.
당연히 축퇴된 전자들이 내는 압력이 더 크겠지.
이렇게 축퇴된 전자들이 내는 압력을 전자의 축퇴압이라고 부른다.
전자축퇴압의 모식도
만약 전자가 축퇴되었다고 하면 그 전자가 속한 영역의 밀도는 존나게 높아서 발 디딜 틈이 없을 것이다. 그러면 이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끊임없이 충돌을 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게 아주 정상적인 논리전개다.
하지만 그게 아니다. 오히려 축퇴된 전자들은 충돌을 '전혀' 하지 않는다. 서로를 피해다니는 것이다.
만약 충돌을 하게 된다면 정확한 각도를 가지거나 질량중심끼리 부딪히는 기적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는 이상 운동량 보존법칙에 의해
어느 한쪽의 모멘텀은 증가하게 될 것이고 다른 한쪽은 감소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증가하거나 감소한 모멘텀에 해당하는 자리는 이미 다른 전자들이 채워버렸기 때문에 더 이상 들어갈 수 없다.
그래서 아예 충돌 자체를 시도하지 않는 것이다. 아니, 충돌을 못하는 것이다.
밀도가 존나게 높은데 각각의 입자들은 충돌조차 안 한다니.. 말이 되는가?
이렇게 입자간 서로 반발을 하지 않는 신기한 성질을 지닌 물질을 가리켜 초유체(superfluid)라고 한다.
4. 우주에 존재하는 전자축퇴현상
우주는 존나게 광대하기 때문에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이상한 일이 보란듯이 일어나고 있다. 그 중에는 전자축퇴현상으로 벌어지는 현상도 존재한다.
전자 축퇴는 보통 온도가 존나게 낮거나 밀도가 매우 높아야 발생한다.
우주의 온도는 절대영도보다 대략 3~4도쯤 높을 테니 축퇴현상이 비일비재 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우주의 밀도는 1 세제곱 미터당 수소원자 0.5개 수준으로 정말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축퇴를 일으킬 물질 조차 없다.
그렇다면 남는 가능성은 바로 밀도가 매우 높은 케이스인데, 눈썰미가 있다면 딱! 떠오르는 녀석이 있을 것이다.
백색왜성.
백색왜성이 아니더라도 비슷한 녀석인 중성자별이나 블랙홀을 생각했다면 여기까지 무리없이 잘 따라와준거다.
뭐 어찌됐든,
이 백색왜성이라는 놈은 이름이 전하는 의미 그대로, 하얀 놈인데 존나 쪼그맣기 때문에 백색왜성이라고 불리운다.
백색왜성의 밀도는 각설탕만한 공간에 수백~ 수천톤이 뭉쳐져 있는 수준으로 생각하면 된다.
백색왜성은 위에서 말한 대로 전자의 축퇴현상에 의해 탄생한 돌연변이다.
원래대로라면 별이 폭발을 하거나 바깥으로 가스를 날려버린 후 남은 물질들은 빠른 속도로 중심을 향해 떨어지게 된다.
하지만 전자축퇴라는 현상 때문에 같은 모멘텀에 두 개이상 동일한 녀석이 존재하지 못하게 됐고,
낙오된 녀석들이 더 큰 모멘텀으로 튕겨져 나가면서 엄청난 축퇴압을 발생시키게 되는데,
이렇게 발생한 축퇴압은 수축하려고 하는 중력을 다시 밀어내어 어느 적절한 수준에서 타협을 이루어 내 겉으로 보기에는 아주 평온해보이게 된다.
이 상태에 해당하는 녀석이 바로 백색왜성이라는 거지. 이렇게 겉으로 보기엔 평온해보이는 상태를 우리는 '정역학적 평형상태'라고 부르기도 한다.
5. 그렇다면 중성자별, 블랙홀은?
그렇다면 우리는 충분히 이 생각을 해볼 수 있다.
만약 중력이 좀 더 커서 전자축퇴압을 이겨낼 수준이 된다면?
만약 터지고 남은 물질의 질량이 이 상태가 되는 적절히 무거운 녀석이 존재한다면(태양질량의 1.4배~3배사이의 질량)
애미뒤지게 쎄진 중력은 전자축퇴압 정도는 간단히 이겨버리게 된다.
하지만 축퇴현상이 페르미온의 공통된 특성이라고 앞서 말했듯, 전자만이 축퇴현상을 가지진 않는다.
신기하게도 중성자도 축퇴현상이 존재하는데, 이새끼는 전자보다 2천배정도 무거워서 더 높은 밀도에서 축퇴가 된다,
만약 초기 질량이 충분치 않았다면 전자의 축퇴압은 이겨서 더 수축할지 몰라도 이 중성자가 축퇴되는 지점에서 중성자 축퇴압에 막혀
정역학적 평형상태가 만들어질 것이며, 우리는 이를 '중성자별'이라고 부른다.
중성자별은 직경 20~30km수준의 좆만한 별로, 작다고 무시할 수 있으나 이새끼의 밀도는 가히 상상을 초월할 수준이다. 각설탕만한 부피의 질량은
무려 수천억톤을 가볍게 넘어버리는 수준이며, 자전속도는 각운동량 보존법칙에 따라 초당 수백~수천번 회전은 기본이다.
애미뒤지게 높은 밀도와 자전속도 덕에 이새끼는 양 극단으로 상상을 초월할 수준의 전자파를 뿜어내기도 하며, 자기장마저도 너무 쎄서
사람이 그 근처에만 가도 기본입자로 분해될 수준이다.
만약 질량이 진짜 엄청나게 커서(계산에 따르면 이 질량은 태양질량의 약 3배임)
터지고 남은 질량이 태양질량의 3배이상이 된다면 존나 커진 밀도와 중력은 중성자의 축퇴압마저 이겨버리며 또다른 정역학적 평형상태에 도달하기까지
무한소로 수축하게 된다. 우리는 이를 '블랙홀'이라고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