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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사법시험(6회)에 합격해 1972년 대구지법을 시작으로 28년간 판사로 일했다. 제주지방법원장·인천지방법원장에 이어 2000년 서울중앙지방법원장을 끝으로 퇴임해 법무법인 태평양에서 고문 변호사로 9년간 일했다.


그러다 돌연 사표를 내고 미국 머시드 캘리포니아대(UC머시드) 대학원 물리학과 석·박사 통합과정에 입학했다. 고등학교 때부터 마음에 품고 있던 물리학자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였다. 그 후 7년, 한국에 한 번도 오지 않고 학업에 전념한 결과 지난 15일 물리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한국 가면 만날 사람도 많고 공부 리듬이 흐트러질까 봐 일부러 안 갔다고 한다.


 


"미국에서는 졸업식을 ‘Commencement(시작)’라 부른다. 이제 다시 시작할 때가 온 것 같다.


논문도 어려웠지만 그 전에 물리학 기초를 공부하는 게 훨씬 어려웠다. 유학 와서 접한 물리학 이론들이 거의 외계어 수준이었다. 양자역학 같은 것도 미국에 와서 처음 공부했다. 영어도 안 되고 첫 학기엔 수업을 거의 알아듣지 못해 강의 시간엔 어디까지 진도를 나갔는지만 확인했다. 집에 돌아와 참고도서 찾아보며 이해될 때까지 하루 15시간씩 매달렸다. 1년 정도 지나니 조금 나아지더라.


물리·수학에 관심이 많았다. 고3 때까지 물리학과를 마음에 두고 있었는데, 화학 선생님이었던 아버지가 갑자기 ‘법대를 가라’고 하셨다. 그때만 해도 부모님 말씀이 하늘 같던 때였고, 나보다 세상을 오래 산 분이니 다 뜻이 있지 않을까 싶어 따랐다.

 

로펌으로 옮기고 나서 주로 로펌 운영에 관련된 일을 했는데 별로 적성에 맞지 않았다. 그러다 우연히 교보문고에 들렀는데 그날따라 과학책 코너에 눈이 가더라. 기하학 책을 한 권 펼쳤더니 신기하게도 고등학교 때 호기심이 다시 샘솟는 걸 느꼈다. 공무원 연금만으로 충분히 살 수 있는 지금이 하고 싶던 일에 도전할 때가 아닌가 생각했다.


하고 싶은 일보다 현재 해야 하는 일에 우선순위를 두는 삶을 살았다. 가지 못한 길에 계속 미련을 두면 현실이 붕 떠버릴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하지만 물리학을 다시 공부하겠다는 결단을 한 후엔 적극적으로 움직였다. 원래 유학까지 생각하진 않았는데 절친한 핵물리학자 한 분이 ‘미국에 가면 새로운 기회가 있을 거다’ 하더라. 즉시 영어 학원에 등록해 토플과 GRE를 공부했다.


힘들지만 모르던 걸 하나씩 알아갈 때의 성취감은 대단하다. ‘아이고 이 어려운 게 해결이 되는구나’ 싶으면 얼마나 기쁜지.”


미국에선 아무도 나이를 묻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나도 나이를 자연스럽게 잊게 되더라.


규칙적인 생활을 한다. 오후 10시쯤 자고, 새벽 1~2시에 잠이 깨 다시 두세 시간 공부하고, 한두 시간 더 잔 후 7시에 일어나 등교하는 생활을 7년간 반복했다. 매일 조깅도 거르지 않았다. 그 덕분인지 큰 문제는 없다. 스트레스를 받을 땐 중학교 때부터 배운 클래식 기타를 쳤다. 밥 먹고 소화도 시킬 겸 30분씩 쳤다.


앞으로 1~2년간 ‘볼런티어 연구원’ 신분으로 UC머시드에서 공부할 계획이다. 볼런티어 연구원은 포스트 닥터(박사 후) 과정과 비슷하지만 보수를 받지 않고 개인 연구에만 집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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