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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빛의 메아리

과정 2017. 3. 26. 13:18

우주에서 소리를 외치면 어떻게 될까?




기본적으로 대기권 바깥 우주는 소리를 전달할 매질인 공기가 없는 진공 공간이다. 때문에 맨몸으로 이곳을 나선 사람들은 소리로 의사소통을 할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소리에 의한 메아리도 없다.




대신에 우리는 빛이 소리와 성질이 비슷한 파동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리고 소리와는 다르게 매질이 필요 없는 파동이라는 사실도 알고 있다.




소리가 벽면에 반사되어 울리는 것처럼, 빛도 물체의 단면에 반사되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덕분에 우리는 거울로 스스로를 바라보거나, 나아가서 스스로 빛을 내지 못하는 행성이나 성운들을 볼 수 있다.




그럼 빛도 메아리 칠 수 있는 걸까?




2002년 1월 6일, 외뿔소(유니콘)자리 방향에서 갑작스럽게 아주 밝은 섬광이 관측되었다.


과학자들은 이 섬광을 변광 현상으로 판단하고 변광성 명명법에 따라 외뿔소자리의 변광성 838번(V838 Monocerotis)이라고 명명하였다.




과학자들은 838번의 밝기를 시간에 따라 기록한 그래프가 쌍성계에 포함된 백색왜성이 주기적으로 일으키는 폭발인 신성(nova)과 유사하여 838번을 우리 은하에서 일어난 단순한 신성 폭발으로 판단하였다.


하지만 허블 우주 망원경을 이용해서 변광성을 수개월, 수년 동안 상세하게 살펴본 결과 흥미로운 현상을 목격할 수 있었다.




바로 별의 주변으로 껍질이 터져 나오는 "것처럼" 보이는 현상이다.


껍질은 단 7개월 만에 지름 4광년에서 7광년으로 팽창하였다.


여기서 이상한 점이 있다. 초당 약 30만 km로 전파되는 빛이 1년 동안 이동한 거리가 1광년이라는 것을 생각해보자.


그러면 껍질은 단 7개월 만에 3광년이나 팽창하였으므로 빛보다 무려 5배나 더 빠른 속도로 팽창하고 있다는 놀라운 결과가 나온다!




그 전에도 우리 은하 외부에서 빛보다 더 빠른 현상들이 여러번 목격되긴 했다.


그러한 초광속 운동(superluminal motion)은 일부 사례를 제외하고 물체가 빛의 속도에 가깝게 움직이면서 일어나는 효과에 의한 겉보기 현상이었을 뿐,


실제로 빛보다 더 빠른 것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838번에서 나오는 껍질도 빛의 속도에 가까운 속도로 팽창하고 있을까?


만약 그랬다면 껍질은 팽창하는 과정에서 성간 물질과 충돌하여 어마어마하게 뜨거워지면서 초신성 잔해와 비슷한 특징을 보였을 것이다.


그리고 여러 관측 결과도 껍질이 빛의 속도에 가까운 속도로 팽창하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주지 않는다.


사실 여러 사람들은 이에 대해 한가지 편견에만 집착하고 있다.




이 껍질이 별이 폭발하면서 방출된 것이라고만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껍질은 별이 폭발하기 전부터 계속해서 있던 것이었고, 크기도 폭발 전이나 폭발 후나 비슷했다.


그렇다면 왜 껍질은 빛보다 빠르게 팽창하는 것처럼 보일까? 과학자들은 이것을 "빛의 메아리"(light echo) 현상으로 설명했다.




빛의 메아리란 큰 소리에 의한 메아리처럼 짧은 시간 동안의 섬광과 주변 공간의 기하학적 형상에 의한 반사와 산란으로 빛의 전파 방향이 바뀌는 현상이다.


과정에서 섬광 주변 물체들의 형태가 공간적으로 크게 차이나면 메아리를 한 번이 아닌 연속적으로 여러번 볼 수 있게 되며, 메아리가 마치 빛의 속도보다 더 빨리 퍼져나가는 폭발 같은 착시를 보게 된다.



쉽게 그림처럼 화살표가 향하는 방향에 있는 관찰자로부터 서로 다른 거리에 떨어져 있는 여러 개의 구름 덩어리가 있다고 생각해보자. 그리고 각 구름으로부터 가까운 지점에서 잠깐 동안 밝은 섬광이 깜빡였다.


그러면 공간 상으로 가장 가까이 있는 구름 1에 가장 먼저 섬광이 도달하여 일부가 반사될 것이고, 그 다음에 구름 2, 구름 3 순으로 빛이 반사된다.


그러나 구름 1이 관찰자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거기서 반사된 섬광이 관찰자에 도달하는 데는 다른 구름보다 더 많은 시간이 요구된다.


따라서 적절한 거리 조건만 갖추어지면, 관찰자는 그림의 하단처럼 섬광이 일어난 후(Time 1)에 섬광으로부터 각자 다른 접선 거리에 있는 주변 구름에서 반사된 섬광(Time 2)을 동시에 목격하게 된다.


즉 관찰자가 보기에 섬광으로부터 가장 가까이에 있는 구름 1에서 먼저 섬광이 반사되어 보이는 것이 아니라, 다른 구름과 동시에 반사되어 보이면서 섬광으로부터 더 멀리 있는 구름 2와 3까지 빛은 빛의 속도보다 더 빠른 속도로 움직인 것처럼 보인다.


이것은 관찰자가 모든 구름이 관찰자로부터 섬광과 동일한 거리에 있다는 착각에서 기인한 것이다.


따라서 실제로 물체가 광속에 가깝게 움직이고 있기 때문에 일어나는 초광속 운동(superluminal motion)과는 다른 유형의 겉보기 초광속 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둘은 모두 잘못된 좌표계 사용이나 일부 물리량의 부재로 인한 착각으로부터 잘못 계산된 것이다.


과학자들은 빛의 메아리를 정확히 분석하기 위해 지구와 섬광을 초점으로 두고, 겉면에 메아리 천체를 두는 타원체 좌표계를 설정하고 있다.




빛의 메아리의 원인이 되는 섬광 같은 우주에서 갑작스레 일어나는 밝기 변화는 주로 강렬한 변광성이나 초신성, 감마선 폭발 같은 순간적이고 폭발적인 현상의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다.




간혹 펄서 같은 천체 주변에서 여러 겹의 고리가 발견되기도 하는데, 이 역시 서로 다른 거리에 있는 여러 성운에 의해 일어난 메아리이다.


 


위에서 설명한 원리로 대충 유추할 수 있지만, 짧은 시간 동안의 지속적이고 주기적인 밝기 변화와 각 메아리 천체 사이의 거리 차이 때문에 고리 형태의 섬광이 보이게 되는 것이다.




빛의 메아리는 아주 강렬한 섬광이 짧게 지속되면서 일어나는 현상이기 때문에 겉보기에 우주에서 관찰할 수 있는 것 중에 가장 역동적인 현상처럼 보인다.


단 몇일 간격의 사진만으로 수면 위의 일렁임이나 퍼져나가는 물결과 같은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렇지만 이는 아까도 말했듯이 착시 현상이다. 실제로 다른 물체들은 멈춰 있다고 생각될 만큼 메아리의 전파 속도에 비해 아주 느린 속도로 움직이고 있다.




과학자들은 메아리의 전파 속도와 스펙트럼, 그 외 요소들을 이용해서 주변 공간의 형상과 화학 조성을 알아낼 수 있으며, 삼각시차와 유사한 기하학적인 방법을 통해 그 공간까지의 거리도 측정할 수 있다.


이를 통해 고물자리 RS별이라는, 거리를 측정하는 눈금자로 쓰이는 세페이드 변광성까지의 거리를 정확하게 측정하면서 과학자들은 거리 측정의 정밀성을 향상시키기도 했다.




또 일부 과학자들은 일부 은하 중심에 있는 거대한 블랙홀 주변의 밝은 영역에서 관측되는 메아리를 통해 블랙홀 주변 영역을 지도화(reverberation mapping)하여 블랙홀의 질량을 측정하기도 한다.


이를 통해서 거대 블랙홀과 은하 사이의 진화적 상관 관계를 연결짓는 역할을 하기도 하였다.




이렇게 빛의 메아리는 천문학의 여러 분야에서 주변 공간을 살피고 여러 천체의 물리학적 상관 관계를 분석하는 데 중요하게 쓰이고 있다.


빛의 메아리는 보통 일반인도 관찰할 수 있는 수준의 밝은 천체에서 관찰되는 것은 아니지만, 후에 기술 발전으로 장비가 더욱 고급화 되고 대형화 될 수 있으면 그 때는 일반인도 관찰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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