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퀼티드 아머
두터운 솜, 양털 부스러기, 헝겊 부스러기등을 가득 채워넣어 만든 천갑옷.
주로 메일과 함께 사용되었던 갑옷이다.
가난한 병사들은 이 것 하나만 입고마는 경우도 많았다고 한다.
아무래도 맨몸보다는 나을테니..
일상 의복으로 보이면서 몸을 보호하기 때문에 고위층에서도 자주 입었다고 한다.
중세 갑옷 사의 최강 티어급인 플레이트 아머가 퇴출하기 전까지 오랫 동안 쓰였다.
십자군 전쟁 때 중무장한 십자군들은 퀄티드 아머만 두른 아랍 군들을 보고는
'저 새기들 천만 둘렀네 ㅋㅋㅋ 갑옷 안두름 ㅋㅋ'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랍 군들은 갑옷의 철판이 태양빛에 달궈지는 것을 막기위해 유럽군들과는 반대로 입었었을 뿐이다.
겉무장만 보고 자신만만하게 돌격하던 십자군들은 단단한 천갑옷에 당황해서 시발 털리기도 했다.
그리고 어째선지 아직까지 아랍 군들의 이미지가 천갑옷이나 가죽갑옷으로 되있다.
메일 아머
철로 만든 고리 여러개를 엮어 만든 갑옷.
우선 먼저 이름부터 짚고 넘어가자.
흔히 체인 메일로 많이 알고 있는데 사실 이건 동어반복이다. 족발처럼.
메일이라는 뜻 자체가 체인 아머를 칭하기 때문에 체인 메일은 맞지않다.
편지(mail)와 동음이의어라서 구분하기 위해 일부로 이렇게 쓴단 말도 있고
역사가의 잘못된 번역이라는 말도 있다.
사슬 갑옷은 서양만 사용한게 아니라 동양에서도 사용됬다.
시기는 동양이 앞서지만, 동양에서 서양으로 전파된게 아니라 서양에서 독자적으로 고안해서 퍼진 것이라고 한다.
초기엔 머리와 상체만 보호하고 다리는 천쪼가리나 가죽으로 보호를 했는데
12세기 이후 중장보병의 등장으로 스타킹형태로 만들어 다리도 보호했다.
이 때, 가터벨트처럼 허리에 멘 벨트를 걸어서 착용했다.
베기에 대해서는 우수 했지만 구조상 타격이나 찌르기에 취약했다.
그렇다고 찌르기에 무작정 약한건 아니다.
촘촘하게 잘만 만든다면 멀리서 날아오는 흐르는 화살정돈 막았다.
하지만 촘촘히 만들어도 근거리에서 찌르는 무기엔 역시 취약했다.
폴암, 창, 망치, 원거리 무기등의 발달과 판금 갑옷이 등장하기 시작하면서
안에 입는 내갑의로 전락했다.
그래도 전락하기는 했으나 판금갑옷들이 관절까지는 막아주지 못하였기때문에
트랜지셔널 아머가 은퇴할때까지 사용되어진다.
17세기 이후에도 간간히 사용되었으나 날아오는 총탄에 맞으면 사슬이 파편이 되어
몸에 박혀버리기 때문에 잘 사용되지 않았다.
이 때, 전쟁에서 살고 싶으면 메일을 벗고 다녀라라는 말이 퍼졌다고 한다.
트랜지셔널 아머
13세기 중반~14세기 초에 등장한 최초의 판금 갑옷.
트랜지셔널 아머는 사슬과 판금을 적절히 혼용한 갑옷을 일컫는다.
철을 이용해서 만든 갑옷 중 가장 먼저 나온 부위는 투구지만 메일에서 판금 방어구로 넘어갈 때
가장 먼저 나온 부위는 다리보호구들이다.
이 판금 갑옷의 이용자들은 주로 기병이었는데 전투 시 가장 취약한 곳이 다리 였기 때문이다.
이 다리 보호구가 개발된 후 기병들은 쓸 대 없이 무겁고 크기만 큰 거대한 방패를 들 일이 사라졌다.
그리고 다른 반대 쪽 발도 보호가능 하게 됬다.
종종 어께 아랫부근에 둥근 원판을 달아 놓은 갑옷도 있다.
움직여야하므로 판금으로 고정시킬 수 없는 부위를 보호 해주는 역할과 동시에
날아오는 화살을 흘려버릴 수 있게 했었다.
여태까지의 갑옷들과는 차원이 다른 갑옷이었지만 그래도 실제론 달랐다.
메일위에 판금을 입으면 방어가 상당하지 않겠냐고 생각 했지만 단점이 많았다.
갑옷끼리 잘 맞물리지도 않았고 판금으로 보호되지 않는 틈새 사이로 찔러 들어오는 공격에 취약했다.
그리고 가장 큰 단점은 이 갑옷을 다 입으면 몹시 무겁다는 점이었다.
적게는 30~35 보통 40~50.
이 후 대규모 공방이 설립 되고 플레이트 아머가 개발되면서 은퇴한다.
버프 코트
16세기말에 등장한 가죽 갑옷. 이름 그대로 소가죽 갑옷이다.
생선기름에 재운 후 그늘에 말리는 방법으로 제작을 했다.
가격 대비 성능이 뛰어났는데, 멀리서 날아오는 총탄, 검의 베기, 어느정도의 타격으로부터 사람을 지켜줄 정도가 되었다.
심지어 무게도 3kg 밖에 하지 않아 갑옷치곤 상당히 가벼웠다.
이 갑옷이 나온 후 병과를 가리지 않고 상당수가 애용했으며 17세기 갑옷의 베스트 셀러였다.
무거운 갑옷을 싫어하는 몇몇 기병들은 이 갑옷만 걸치고 전투를 치르기도 할 정도였다.
17세기 말 염색기술의 강화로 군대에 따라 다양한 색으로 염색이 되었었다.
하지만 18세기 군의 복장이 화려하게 제식화 되면서 은퇴했다.
플레이트 아머
가장 최고의 갑옷.
갑옷의 궁극적인 표상.
기사 이상의 계급이 입었던 갑옷이다.
15세기 초에 등장하는데 트랜지셔널 아머와 크게 다를바가 없어 보이지만
여러겹을 입는 트랜지셔널 아머와는 다르게 플레이트 아머는 단독. 한벌이다.
애매한 관절은 철을 덧댄 거셋(퀼티드 아머와 비슷)으로 보완하고 나머지 모든 부위는 판금으로 뒤덮는다.
트랜지셔널 아머보다 착용도 편해지고 각각의 부위끼리 잘 맞물리게 되어 여러 겹을 입었을 때 보다 가볍고 튼튼해졌다.
(구시대 갑옷 풀셋팅은 보통 20~30kg 사이. 플레이트 아머 역시 20~30kg 였다.)
위압적이고 방호력까지 뛰어났었다.
플레이트 아머로 풀셋팅한 기병이 헤비랜스를 들고 전진한다면 엄청난 공포의 대상.
해병만 있는 진영에 방어력255짜리 울트라가 돌진하는 셈.
플레이트 아머의 위용은 가히 대단했는데 동 시대의 무기로 도저히 당해낼 수가 없었다.
활은 물론이거니와 총탄까지 막아냈다.
(당시 총은 초기의 형태의 핸드캐넌 이었고, 믿을만한 무기가 아니었다.)
그래서 플레이트 아머에 대항하기 위해 해머, 폴암같은 타격 위주의 무기가 발달했는데
이 역시 플레이트 아머엔 위협적이지 않았다.
서너번 치는 것으론 고작 흠집만 낼 뿐 이었고, 전투 중엔 가만히 있는게 아니라서 같은 부위만 연속으로 노릴 수도 없었다.
운이 좋게 머리를 쳐 잠깐 기절 시키더라도 그 상황은 이미 백병전 상태라 여기저기서 싸우기때문에
취약한 틈새를 찌를 틈도 없었다.
하지만 16세기 파비아 전투에서 플레이트 아머는 굴욕을 맛본다.
화승총을 개발한 스페인이 파비아 전투에서 테르시오 방진(파이크+화승총)으로 플레이트 아머를 풀셋팅한 스위스 용병을 아작내버린다.
이는 중세 유럽 전투력의 핵심인 기사들의 명예를 실수 사건이다.
하지만 파비아 전투에서의 패배가 플레이트 아머를 은퇴의 길로 유도하진 못했다.
패배 이후 플레이트 아머를 총탄에 뚫리지 않게 더 두껍게 제작했고 기술의 발전으로 몇몇 관절마저도 판금으로 덮어버릴 수 있게 됬다.
그리고 파이크 전쟁 이 후 테르시오 방진의 유행으로 창병이 상당수 늘어났는데 이 창병을 카운터 칠 수 있는게 플레이트 아머를 장착한 기사들이었다.
플레이트 아머를 뚫을 수 있는 머스켓이 또 개발되긴 했지만 그 시대에 머스켓은 가격대가 비싸 보급이 잘 되지 않았다.
이 때문에 플레이트 아머는 열병기의 시대가 도래 했음에도 제값을 했었다.
허나 모든 것이 영원할 수는 없는 법이다.
17세기에 들어서면서 각 국은 화력전을 추구하기 시작하고 화력전 특화의 선형진(라인 배틀)이 유행함에 따라 플레이트 아머는 몰락하기 시작한다.
총탄을 막을 수는 있었으나 선형진의 화력으로 빗발치는 총탄을 도저히 막아낼 수가 없었다.
이에 플레이트 아머를 개량해나가지만, 빨라지는 총의 장전속도, 파괴력을 쫒아갈 수 없게 되어 차츰 사라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