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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로봇 1부

과정 2017. 4. 2. 09:32


인간을 닮으면서 인간이 아닌 존재


옛부터 신화와 전설속에선 거인들의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왔다.


그리스의 티탄, 북유럽의 서리거인, 중국의 반고와 한국의 설문대할망.


질병과 자연, 야수들과 싸워야 했던 고대인들은 그것들보다 더 거대해지고 강해져 무언가를 초월한 어떠한 존재가 되길 염원했다.



그 중 그리스의 거인 중 하나인 탈로스는 청동으로 만들어진 거인으로 묘사된다.


탈로스는 크레타의 방어를 위해 적대적인 배를 향해 바위를 던졌고 상륙했다면 자기 자신을 과열시켜 적들을 껴안았다고 묘사된다.


거대함과 강력함은 인간 본연의 본능이 되었고 전해져 내려오다 과학과 기술의 발전으로 로봇이라는 형태로 굳어지기 시작했다.


또다른 이야기로는 인간의 삶을 좀더 편하고 쉽게 만들어 주는 물건의 존재가 로봇의 유래였다는 것이다.


고대 그리스의 공학자, 테시비우스는 시간을 알기위해 유압과 공압의 지식을 이용해 물시계를 만들어 편리를 도모했다.


그러던 중 로봇의 역할을 간단하게나마 요약하는 설화가 나타났다.



바로 유대교의 골렘 설화였다.


전승에 의하면 중세시대 유대교 랍비가 수행을 마치고 진흙을 뭉쳐 emeth(진리)라 쓰인 양피지를 붙이면 완성된다고 하였다.


이렇게 만들어진 골렘은 주인의 명령에 충실히 따랐으나 어떠한 이유로 포악해져갔고 주인은 다시 골렘을 봉인하였다고 한다.


실질적으로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인간을 닮은, 인간을 따르며 인간을 편리하게 해준다는 어떠한 다른 존재임을 확실시 하는 사례였다.


이러한 신화, 설화는 인간이 이후 공상과학이라는 장르에서 로봇이라는 존재를 상상하는데 원동력이 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상상력은 반드시 유쾌한 상상과 자극을 주지않았다.


1818년 메리 셸리라는 18살 여자아이의 상상력은 어느 소설을 만들어냈다.


인간에 의해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생명체가 자신의 정체성에 고뇌하고 그로 인해 주변인들이 파멸함과 

동시에 완벽함을 추구하는 과학에 대한 경계라는 교훈을 담고 있었다.



이 소설은 곧 프랑켄슈타인이라는 이름으로 팔렸으나

당시 사회상에선 그저 어린 여자아이의 병적인 상상력에 의해 만들어진 기괴한 결과물이라는 악평만이 존재했다.



시간은 흘러 1921년, 동유럽의 체코슬로바키아의 극작가, 카렐 차펙은 자신의 형의 아이디어를 차용하여 그의 희곡을 완성시킨다.


그 희곡의 이름은 로섬의 만능로봇회사(Rusumovi Univerzalni Roboti)



그의 극은 먼 미래, 인류는 인조인간인 '로봇'을 만들어 노동과 전쟁을 시키고 스스로 쇠퇴하기 시작하여

결국 로봇들이 반란을 일으킨다는 암울한 배경이었다.


극 중 로봇들은 인류를 정원사 한명만 남기고 모두 죽여버려 자신들을 재생산할수 없는 오류에 빠져버리고 

스스로 자멸해가는 과정을 다루고 있었다.


그러나 인간을 본따 마지막으로 설계된 두 로봇은 사랑이라는 인간만이 공유하는 감정을 가지고 있다는것이 밝혀졌고

그들이 새로운 아담과 이브로 되는것으로 막은 끝난다.


이 중 인류에 의해 만들어지고 인류를 전멸시킨 로봇은 체코어로 노동을 뜻하는 'Robota'에서 따온 'Robot'


이 희곡이 성공함과 동시에 로봇이란 단어는 전세계로 퍼진다.


시간은 조금 더 지나 1927년, 신대륙의 뉴욕에서 세계 박람회가 열린다.


그곳에서 미국 웨스팅하우스사의 전기기사, 웬즐리가 설계한 인형이 출품되었다.


이 인형은 남들이 생각하는 인형과는 달리 천이 아닌 금속으로, 머리카락과 옷이 아닌 수십개의 전선으로, 휴대가 불가능한 인형이었다.



그 인형은 내부에 송수신기가 설치되어 미리 녹음된 내용을 이용해 어느정도 걸려오는 전화에 대하여

응답이 가능한 매우 혁신적인 '로봇'이었다.


그 인형은 마이크가 달려있어 소리를 잡아냈고 그것을 전류로 전환해 송수신기를 통해 계산된 결과에 따라

입력된 내용을 발신하는 기기로 이루어져있었다.


조금 더 지난 1937년, 웨스팅하우스는 일렉트로라는 현 시대에 근접한 로봇을 제작하였다.



일렉트로는 텔레박스보다 더 진보되었고 무선조종기에 의존하지 않고 내부에 장비된 전화 송수신기로

음성인식에 반응하는 최첨단기계였다.


발 부분에 장비된 롤러는 일렉트로가 관절이 없는 대신 움직이게 해주는 역할을 하였고

손가락 관절을 구부리는데 9개의 모터가 필요하였다.



인간이 신의 권위에 도전하는 순간이었다.



1961년 존스 홉킨스 대학은 '비스트'라는 로봇을 개발했다.


이 로봇은 소나를 이용하여 복도와 방, 광장을 돌아다녔고 배터리가 방진될 경우 스스로 콘센트를 찾는 성능을 가지고 있었다.



1961년, Mowbot이란 로봇이 발명되었다.


이 로봇은 자동적으로 마당을 벌초하는데 성공했고 미 전역에서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1970년, 스탠포드 대학은 카메라와 거리측정기, 범퍼를 가지면서 자율행동을 구사할수있는 '샤키'를 개발했다.


냉전시대를 지나 우주시대가 개막하자 로봇의 용도는 무궁무진한 가능성이 있음을 알게되고 모든 곳에 사용되기 시작한다.



화성 탐사선이라는 이름하에 로봇들이 보내졌고 이들은 지금도 화성에 관련된 자료를 지구로 송신하고 있다.


로봇은 인간들의 일상생활에도 간섭할수도, 발전시킬수도, 파멸시킬수도 있는 존재로 발전한 것이다.


고대 그리스때는 '안티키테라 기계'가 만들어졌다.


3대 오파츠라 불려지는 이 기계식 계산기는 매우 정교한 기술로 인간의 목적을 위해 만들어졌다.


증기기관시대에 로켓을 쏘아올렸다는 비유가 나올만큼 이러한 기술의 발견은 역사가들과 공학자들에게 꿈처럼 다가왔다.


'나도 저런것을 만들수/발견할수 있지 않을까?'



1495년,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로봇'이라는 갑옷을 구상해냈다.


희대의 천재가 만든 이것은 내부에 축바퀴와 케이블을 이용해 앉고 일어서며 스스로의 관절을 움직일수있는 갑옷에 대한 설계도였다.


기계는 서서히 인간의 형상에 다가가기 시작했다.


1920년, 카렐 차페크가 그의 희극에서 '로봇'이라는 단어를 만들어냈다.



1927년, 프리츠 랑이 만든 영화 '메트로폴리스'에 여성형 로봇, '가이노이드'가 처음 선보여졌다.


인간 '마리아'를 본따 만든 로봇은 곧 노동자들에게 희망이 되어주었으나 거꾸로 노동자를 선동하는 용도로 변질되어갔다.



하지만 이 마리아는 휴머노이드를 뜻하는 매우 상징적인 의미였고 이후 스타워즈의 C3PO로 오마주되기도 하였다.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인간의 사회가 점점 더 암울해져간다는 '디스토피아'라는 개념이 사람들에게 더 다가오기 시작했다.



1942년, 아이작 아시모프가 로봇 3원칙을 제시하였다.


로봇은 인간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다.

로봇은 첫 원칙에 위배되지 않는 한 인간의 명령에 복종한다.

1,2원칙에 위배되지 않는한 로봇은 자기 자신을 지킨다.


그의 이론은 이후 수많은 공상과학의 로봇들의 특징과 그것에 대한 상상력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로봇에게 윤리와 도덕이라는 것이 처음 제시되었고 이제 인간의 전유물이라 여겨진 감정만이 이제 인간과 로봇을 구분하기 시작했다.


신의 영역에 도달하기 시작한 새로운 창조주들은 문득 자신들에게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질문은 윤리나 도덕이 아닌 로봇의 형태에 대한것이었다.



어떻게 하면 로봇을 더 친근하게 만들수있을까?


어떻게 하면 로봇을 상업적으로 성공할수 있게 할수있을까?


어떻게 하면 로봇을 더 뛰어나게 만들수 있을까?



하지만 과학자들과 공학자들은 어설픈 흉내는 혐오만 일으키는 불쾌한 골짜기에 대해 알고 있었다.



인간과 닮았으나 죽은 시체, 좀비만 해도 인간에게 구역질과 역겨움, 증오를 불러일으키는데

완전히 살아있는 인간을 흉내내면 얼마나 더 큰 증오를 불러일으킬까?



1970년 일본의 로봇공학자, 모리 마사히로는 어설픈 흉내는 혐오만 일으킨다는 논문을 발표한 적이 있었다.


2004년작 3D 애니메이션 폴라 익스프레스는 인물을 표현한다는 것에 주목을 받았으나

미묘하게 결여된 생동감과 기술적인 문제로 아이들의 혐오감만 불러일으켰었다.



우리들이 흔히 알고있는 성형괴물, 성괴도 불쾌한 골짜기에 속하는 부류다.



어설프게 만들어진 이준기 로봇도 불쾌한 골짜기를 설명하는 좋은 예시다.


그러면 어떻게 할것인가?


인간과의 '닮음'을 포기할 것인가?


결국 공학자들은 로봇을 인간의 형태만 띄도록 만들기로 했다.


머리와 두 팔, 두 다리.


매우 간단하고도 복잡한 설계가 시작되었다.


인간을 뜻하는 Human과 닮음을 뜻하는 ~oid가 합쳐져 'Humanoid'라는 단어가 탄생했다.



1984년, 일본 와세다 대학에서 인간과 소통하며 악보를 읽을수있는 Wabot-2가 나타났다.


허나 아직까지 이 로봇들은 인간처럼 걸을수있는 능력이 결여되어있었다.


대부분 기술적인 문제였다.


이 때문에 자가보행이 가능한 로봇의 개발은 아직 먼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바로 다음해인 1985년, 13초동안 보행이 가능한 WHL-11이 히타치 공업에서 개발되었다.


13초 보행과 좌/우회전이 가능한 로봇이었다.



1995년, 와세다 대학은 인간-로봇 의사소통 연구를 위해 안구와 관절, 입을 움직이는 시늉을 하며 말하는 'Hadaly'를 개발했다.


Hadaly는 19세기 SF소설 '미래의 이브'의 주인공 로봇의 이름을 따왔다.


사람과 의사소통이 되는 이족보행로봇이 서서히 인간들에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새 천년인 2000년, 혼다는 52kg, 무게중심의 자동인식기능, 상단기구를 완벽하게 만든 'Asimo'를 선보였다.


전세계가 이 최첨단 로봇에 경악하였고 일개 자동차 회사에서 이런 로봇이 만들어졌음을 더 놀랍게 여겼다.



태평양 너머 신대륙, 또다른 기술 초강대국인 미국은 일본과는 달리 다른 방식을 이용해 나아가고 있었다.


실용주의를 중시한 그들은 국가 단위로 예산을 투자하는데 관심이 없었다.


오히려 그것을 만드는 이론을 확실하게 확립하고 구성 이론을 체계화시키기 시작했다.


물론 1980년, 일본의 아시모와 비슷한 시기에 개발되기 시작한 이족보행로봇이 있었다.


미국의 로봇개발은 스푸트니크 쇼크에서부터 이루어졌다.



그들의 로봇개발은 우주경쟁에 인간을 보조할 로봇을 중점으로 이루어졌고 국방성 산하 DARPA에 천문학적인 지원을 시작하면서 개막되었다.



매년 30억의 연구 예산을 받으며 그들은 NASA에 투자를 하였고 2010년, 'Robonaut'라는 우주용 로봇을 개발해냈다.


휴머노이드 로봇들의 목적은 간단했다.


인간의 삶을 좀더 편하게 하는 기존 로봇에 좀더 맞게 설계되는것.


인간형 로봇, 휴머노이드는 여러 과학 분야에서 연구도구로 이용되었다.


연구원들은 인간의 구조와 행동을 알기위해 휴머노이드를 이용해왔고 다른 측면에서 인체를 시뮬레이션하기 시작했다.


인간의 인식과 자각, 운동 기술을 이해하기 위해 진보된 휴머노이드는 각광받기 시작했고 그 구조 역시 인간과 유사해지기 시작했다.


연구용 이외에도 휴머노이드들은 병자, 노인, 위험하고 더러운 일을 보조하거나 작업을 직접 하는 용도로도 사용되었다.


또한 그들은 엔터테인먼트용으로도 사용되기 시작했다.


노래를 부르거나 건반을 두들기며 춤을 추는 로봇들은 이미 개발되었고 그중 몇몇은 유니버셜 스튜디오에서 만나볼수있다.



심지어 로봇 페티시즘, 즉 ASFR(Alt Sex Fetish Robot)라던지 변태성욕자나 성욕에 굶주린 이들을 위한 섹스용 로봇도 개발중에 있다.


기초적인 형태는 러브돌에 녹음기만을 추가한것이지만 기술이 개발함에 따라 자유로운 포즈를 취할수있도록 개발 방향이 잡혀있는 상태다.



이렇게 로봇, 휴머노이드의 개발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다시 과학자들과 공학자들이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기술도 발전하고 과학도 엄청나게 발전했는데 완전한 인간처럼 만드는건 어떨까?'


이미 안드로이드, 인간을 뜻하는 Andro와 닮음을 뜻하는 ~oid는 1886년 오귀스트 빌리에 드 릴라당의 소설, 미래의 이브에서 제시된바 있었다.


세계 최초로 로봇페티시즘과 가이노이드, SF소설이라는 분야를 개척한 소설이었다.


하지만 휴머노이드와 안드로이드의 차이점은 명확했다.


휴머노이드는 인간의 형태만 띄는 것이고, 안드로이드는 인간의 형태와 인간의 행동을 하는 것을 지칭하는 단어였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것은 어떻게 인간처럼 생각하고 행동하게 하느냐였다.



그것들은 인간이 아니었으니까 인위적으로 만든 근육과 장기들을 이용하는것은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인간의 대뇌같이 생각하게 하려면 대뇌를 사용하는게 가장 적합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그게 사람인가 로봇인가?



인간의 오만함과 궁금증이 서서히 자기 자신을 조여오기 시작하는듯 하였다.


하지만 왜 이런것이 각광을 받기 시작했을까?


인간 본성에 내재된 심리학과 철학에서 그 답을 찾을수가 있었다.



안드로이드와 인간의 관계를 설명하게 되면 그들은 인간의 피조물이고 인간을 창조자로 만들어주었다.


고대 신화에서 현대 종교까지 인간은 신이 자기자신의 모습을 본따 자신처럼 말하고 생각할수 있는 존재를 만들었다고 했다.


신이 우월하다는 논리와 이론으로 무장된 종교를 보며 인간은 자신의 우월성을 입증하기 위해 안드로이드 개발에 열중하는것이 그 예였다.



어차피 신은 인간속의 믿음에 불과한것이었고 인간이 신을 믿는 이상 인간은 신이 될수 없었다.


하지만 그들이 피조물을 만든다면 그것을 정면에서 타파하는 것이었고 위계질서를 붕괴시키는 것이었다.


그러면 인간은 신의 위치에 서게 되는것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생각할수록 다른 의문점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인간은 자유의지와 그 어느것에도 구애받지 않는다.



그런데 인간과 같이 생각하고 느낄수 있는 로봇들은 어떻게 되는것인가? 그들도 창조자의 입장이 되는것인가?


가장 우스운것은 인간 자신도 창조자이면서 자신의 피조물에 대하여 차별을 가한다는 것이었다.


인간도 아닌것이 인간임을 흉내낸다면 그 누구가 인정할 것인가?


우리들의 스마트폰이 어느날 '나에게도 이성이 있다. 나를 너와 동등한 입장으로 대접해주기 바란다'라고 한다면

대다수의 인간은 그 스마트폰을 부숴버리거나 없애버릴것이다.



인간들은 항상 자신들이 만물의 영장이라며 다른 동물들에 대한 지배권을 자기합리화 시켰다.


그런데 신분사회와 같은 창조자-피조물 관계에서 피조물이 창조자와 맞먹으려고 한다면?


창조자는 어떠한 방법을 써서든 그 피조물을 억압하려고 할것이다.


신-인간의 관계가 인간-기계로 역전될수 있는것이었다.



당연히 그것에 반발하며 인간과 같은 위치에 서기 위해 '인간처럼 생각하는 기계'들은 어떠한 일도 할것이다.


'기계들의 반란'이라는 것이 1920년 이후로 다시 확립되기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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