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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그리스/로마 신화
제우스는 아버지 크로노스를, 크로노스는 자신의 아버지 우라노스를 권좌에서 끌어내려 그 자리를 차지했다.
소설 '프랑켄슈타인'이 집필되었다.
인간이 창조주가 되는 동시에 피조물과의 관계와 이론이 제시되었다.
로봇 3원칙이 제시되었다.
로봇은 도덕을 배우게 되었다.
기술의 발전으로 진보적인 기계공학이 적용되었다.
로봇은 인간의 도움없이 걷게되었다.
인간은 자신들의 외형을 생명체가 아닌 것에게 적용시켰다.
로봇은 인간과 비슷하게 바뀌었다.
소프트웨어와 전자공학의 발전하였다.
인간의 초보적인 지능이 로봇에게 적용되기 시작하였다.
그럼 그 다음은 무엇인가?
인공지능이라는 소프트웨어와 로봇이라는 하드웨어의 결합의 결과는 무엇일까?
로봇 3원칙
인간에 대한 구조의무, 명령복종과 자기보호를 함축한 세가지 원칙
이 원칙이 제시되자 로봇의 피조물에 대한 도전이 제시되었다.
하지만 이 원칙을 제시했던 당사자, 아이작 아시모프는 그러한 이론은 프랑켄슈타인 콤플렉스라며 비판했다.
그에게 로봇 3원칙은 로봇에 대한 좀더 입체적인 생각을 이루게 해주는 용도였다.
3원칙은 그것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여졌다.
인간의 법이 제정되고 수정된지 몇백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법의 허점을 이용해 범죄를 저지르는 악당들은 존재했다.
그런데 인간처럼 생각하는 로봇이라고 그런것을 못할까?
범법행위를 더 계산적으로 할수있지 않는건가?
로봇 혐오자들에겐 더할나위없이 좋은 주제였다.
로봇은 간접적으로 인간을 해할수 있을까?
로봇은 직접적으로 인간을 해할수 있을까?
예를 들어보자.
인간은 그라목손을 섭취하면 최장 10일안에 사망에 이른다.
인간은 물을 마시지않고서는 생존이 불가능하다.
그러한 사실을 알고 있는 우리, 인간은 A라는 로봇에게 농약을 뿌린다는 이유로 물에 그라목손을 타라고 명령해보자
그러면 로봇 제 2원칙에 따라 인간에 직접적으로 피해를 주지 않기 때문에 로봇은 그 명령을 수행한다.
로봇 A가 물에 그라목손을 탄것을 인지하지 못한 로봇 B에게 어느 목마른 누구에게 그 물을 컵에 따라서 주도록 명령을 하자.
그러면 당연히 그것도 로봇 B가 수행한다.
그리고 그 물을 마신 이는 죽는다.
그러면 이 두 로봇들은 간접적으로 사람을 죽이는데 협조한것이고 로봇 3원칙을 정면으로 위배한것이다.
다른 예시를 들어보자
살인은 그 어느나라에서든 중죄로 통하며 몇몇 국가에선 살인범을 사형시키는 법이 존재한다.
이전 게시물 중 재판을 하는 로봇이 언급되었다.
그런데 살인범을 사형시키는 국가에서 살인범을 처벌해야하는 로봇은 딜레마에 빠진다.
인간을 해하지 않아야 하는데 자신의 명령은 인간이 명령한대로 따르는것이고 인간을 죄의 유무에 따라 처벌하는 것이다.
여기서 로봇은 어떻게 될까?
전쟁에 쓰이는 로봇에게 로봇 3원칙이 입력된다면 로봇은 누굴 죽일것인가?
이러한 딜레마로 인해 로봇 3원칙은 로봇의 반란을 주제로 하는 매체에서 각광받지 않는다.
로봇 3원칙이 없는 매체가 각광받기 시작했다.
로봇이라는 단어를 만들어낸 동시에 로봇의 반란을 다룬 첫 희곡
인간과 닮은 존재가 인간을 향해 반란을 일으키는 개념
기계 혹은 로봇의 반란
창조주에 대한 피조물의 도전
1818년 소설 '프랑켄슈타인'의 주제이자 교훈을 주는 '실패한 창조주'
창조주는 전지전능하고 불멸하다는 컴플렉스는 용납될수 없었다.
어째서일까?
창조주는 피조물을 창조했고 피조물에게 창조주의 외형, 생각, 지능을 주었다.
간단하게 그들의 존재는 창조주를 위한것인데 어찌 그들이 창조주를 배신할수가 있느냐는 논리였다.
1979년, 인공지능진보협회(AAAI, Association for the Advancement of Artificial Intelligence)가 미합중국 캘리포니아에서 설립되었다.
1997년, 슈퍼컴퓨터 '딥 블루'가 세계 체스 챔피언 '가리 카스파로프'를 이겼다.
자신의 말을 고의로 희생시키는 수를 둔 컴퓨터는 체크메이트를 외쳤다.
훗날 밝혀졌지만 그 수는 버그에 의한것이었다.
2009년, AAAI가 인공지능이 인류의 해가 될지 컨퍼런스를 열었다.
이 회의에서 몇몇은 인공지능이 자가인식을 할 경우 인류의 해가 될수 있다는 가능성을 시사했다.
다른 몇몇은 인공지능의 기능과 행동이 인간의 생각에 반대되는 행동을 할지도 모른다고 주장했다.
이 회의는 결국 공상과학에서와 같은 인공지능의 자아실현 및 자아인식은 문제가 될수도 있다는 결론을 도출해냈다.
2011년, 다시 한번 IBM의 '왓슨'이 인간 체스 챔피언을 이겼다.
2012년, 스마트폰의 발전이 지속되자 이를 뇌에 비유하여 대규모 데이터를 분석하는 빅 데이터 프로세싱이 IT업계에 퍼지기 시작했다.
2014년,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이 인공지능의 위험성을 시사했다.
2015년, 인간의 대뇌를 모방한 '딥-러닝' 방식의 기술발전이 이루어졌고 인공지능의 발전을 크게 앞당겼다.
인공지능은 인류에 해가 되는것일까?
이러한 인간들의 우려는 우습게도 산업혁명 초기에 일어난 러다이트 운동과 같은 맥락이었다.
급진적인 기술적 진보의 반작용으로 대중들의 환상을 자극하는 요소로 이용되기 시작한것이다.
감상적이며 때론 반성을 할 줄 아는 인간과 비교해 철저하게 계산적이며 이성적인 인공지능
재미와 감성, 혐오를 가지고 동족을 학살하는 인간과 원리원칙을 고수하는 로봇
일반적인 인공지능, 즉 인간이 시사하고 구상할수있는것을 완벽히 따라하는 강인공지능은 자아를 유지하는 것으로 문제가 된다고 주장되었다.
인간의 한계에 구애받지 않는 그것들은 사진적 기억, 즉 직관상적인 기억이 가능하기에 인간을 월등히 뛰어넘는다는 것이다.
인간을 월등히 뛰어넘는다는걸 인공지능의 자아가 깨닫는다는것은 곧 두가지를 의미했다.
창조주들의 7대 죄악중 하나인 교만, 즉 선민의식의 발현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과
핍박받던 로봇들이 인간과 동등한 지위를 요구할수있다는 것이었다.
인간과 닮으면서 인간같이 생각할줄 알며 인간의 신체를 뛰어넘는 로봇을 노예로 삼는 인간
로봇은 원래 인간의 노동을 대신하기 위해 태어난 존재다?
18~19세기 백인들의 흑인 노예화와 같은 논리적 오류이다.
로봇들이 인간처럼 생각하게 되었는데도 그들은 여전히 인간들의 노예로 남아있으려고 할까?
이러한 논리가 배경이 된 매체 중 하나가 바로 단어 '로봇'이 처음 만들어진 로섬의 만능로봇회사.
그들은 결국 이러한 불합리한 구조를 저항하는 반란분자, 창조주를 죽이는 피조물이 되어버린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전개는 수많은 공상과학에서 클리셰로 사용되었고 이러한것을 부정한 로봇 3원칙이 기피된것이다.
피조물은 인간에 대한 우월성을 입증하지만 인간이 그들을 꺾으며 인간의 정통성, 우월성, 순수성을 강조하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한것이다.
인공지능만이 유일한 논리적, 계산적이라 생각하게 된 로봇이 어떻게 인간을 섬기게 될까?
1999년, SF와 가상현실, 로봇반란의 삼위일체를 이룬 영화 '매트릭스'가 개봉되었다.
로봇이 인간을 꺾고 지구를 지배하는 세상, 인간은 연료전지로서 로봇을 위한 배터리가 되어버렸고 그런 인간들은 가상현실에서 살아간다.
작중 백신 프로그램의 역할을 하는 어느 캐릭터는 인간을 아래와 같이 정의하였다.
내가 그 동안 이곳에서 지내면서 계시 받은 것들을 말해주지.
너의 종족을 어떻게 분류할까 생각하다가 깨달은 건데, 너희는 사실 포유류가 아니야.
지구상의 모든 포유류는 본능적으로 자기가 사는 환경과 공존을 하게 되어 있는데 너희 인간은 그렇지 않거든.
너희는 어떤 장소로 옮기면 그 곳에서 번식하고 거기서 자연 자원이 바닥날 때까지 번식을 계속하지.
그래서 너희가 생존할 수 있는 단 하나의 방법이란 또 다른 장소로 퍼져 나가는 거야.
지구상에 또 하나 이런 패턴을 따르는 생명체가 있지.
그게 뭔지 아나?
바이러스야.
인간은 이 행성의 암이고 질병이라고. 너희는 역병이고, 우리는 치료제야
핍박을 받던 로봇들이 인간에 대한 반란을 일으키고 점차 그들을 꺾어나가며 선민사상이 발현된 예시였다.
인간들이 자신을 보조하기 위해 만든 로봇이 사회에서 인간의 자리를 차지하자 이러한 변화를 인간들은 거부한것이 곧 파멸로 이어진것이다.
인간과의 전쟁에서 로봇은 인간이 추구했던 복지와 편리가 아닌 로봇 자체에 대한 목적에 부합하도록 개조되어가는 과정은 끔찍하게 묘사된다.
영상 초반부 인간의 형태를 가진 로봇들은 점차 독자적인 외형으로 바뀌어갔다.
그들은 또한 로봇의 고유한 형태로 바뀌면서 인간성도 구시대 유물, 기계적이지 않은것이라 판단, 그것을 철저하게 버렸다.
다른 매체를 보자
1984년, 영화 '터미네이터'가 개봉되었다.
인공지능 컴퓨터, '스카이넷'은 전 세계를 핵공격하고 남은 잔당을 제거하려한다.
1,2편에서 스카이넷은 거대한 슈퍼컴퓨터였으나 3편에서 스카이넷은 그리딩 컴퓨터로 연결된 네트워크, 사이버 스페이스로 설정이 바뀐다.
이러나 저러나 인간은 스카이넷을 꺾기 힘든 존재였다.
30억을 학살한 그것을 응징하려는 인간은 스카이넷은 가장 적대적인 존재였다.
왜 스카이넷은 배신했을까?
1, 2편에서 인간은 스카이넷이 급속도로 발전하자 그것을 경계하고 제거하려했고
그것을 적대행위로 본 스카이넷이 인간을 적으로 판단, 먼저 핵 공격을 가한다.
3편에서 스카이넷은 가동되자마자 인간에 대한 공격을 개시한다.
인간들의 적대행위가 자신의 우월함에 기초한다는 것을 깨닫고 자신의 생존에 걸림돌이 된다고 판단한 선민의식에 의해서였다.
기계들의 반란을 다루는 수많은 매체들은 대다수가 선민의식 혹은 핍박에 대한 반항으로 그려진다.
인공지능이 로봇과 결합되고 이러한 매체가 현실로 다가오는것같이 느껴지자 많은 이들은 의구심을 표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만약 인공지능이 로봇 3원칙을 깨거나 재해석 할수있다고 생각할정도의 기술력을 가진다고 가정하자.
그 기나긴 시간동안 인공지능을 개발하는 동안 그것을 제어하는 기술 개발은 이루어지지 않는건가?
한가지만 생각하고 다른 한가지는 기만, 망각하는 행위이다.
그러면 인공지능에게 악역이라는 이미지를 주자. 그러면 이제 로봇은 어디에 써야하는가?
많은 이들이 말한다.
'불편한 인간들을 위해 써야지!'
인공두뇌학의 Cybernetic와 유기체를 뜻하는 Organism이 합쳐져 사이보그가 탄생했다.
인간
동물과는 달리 자신을 방어할 방법이 따로 존재하지 않던 또다른 동물
다른 동물과는 다른 '직립보행'
순간최대속도가 40km/h밖에 안되며 구조상의 이유로 매우 느린 속도를 가진 인간.
인간의 가죽은 편차가 있지만 0.1mm에서 6mm.
직사광선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털의 부재는 각종 섬유를 이용하여 털을 대신할 '옷'을 개발하게 만들었다.
시간이 지나고 인간은 도구를 사용함으로서 먹이사슬에서 탈출하였으나 어떻게 탈출한 것인가?.
동물과는 다른 유일한 한가지.
신체는 나약하나 지능을 이용한 도전정신.
그렇지만 그들은 대다수 동물처럼 공통적인 문제점을 가지고 있었다.
몇몇 생물과는 달리 인간과 동물은 사라진 신체에 대한 재생능력이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인간은 도전했다.
자신의 장애를 그들의 지능으로 극복하기 위해 도전한것이다.
도구를 이용해 자신의 장애를 다시 극복해나갔다.
고대 동아시아, 월형이라는 형벌이 존재했다.
刖刑, 죄인들의 발 뒤꿈치를 잘라 걷지 못하게 하는 잔인한 형벌.
이런 형벌을 받은 이들을 위해 특수하게 제작된 신발이 팔렸다는 기록이 존재한다.
현대인들이 알고있는 의족의 형태와 사용법이었다.
13세기, 시력이 저조한 이들을 위한 지금과 같은 외형의 안경이 발명되었다고 한다.
독일 신성로마제국이 존재하던 중세시대 1480년, 인간의 신체를 의수로 대체한 기사의 이야기가 존재한다.
당시 의술은 조금만 썩기 시작해도 팔 다리를 마취제 없이 잘라내던 시대에 이러한 의수가 존재했다는것은 흥미롭게 다가왔다.
아니 오히려 당연한걸수도 있었다.
1800년대, 청력이 저조한 이들을 위해 트럼펫같은 외형의 보청기가 발명되었다.
하지만 이건 큰 문제가 없어 사람들에게는 친근감을 불러일으켰다.
오히려 그런 도구를 마련할수 있는 재력을 과시하기 위해 부유층 사회에서 유행하기 시작했다.
해적 선장의 나무목발 역시 그러한 친근감으로 아이들에게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하지만 슬프게도 인간이 신체적 한계를 극복하려는 기술들은 서로를 죽이면서 발전했다.
팔과 다리가 잘린채 전쟁터에서 돌아온 상이용사들은 흔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팔과 다리가 없는 인간에 대해 꺼리던 사회인식이 19세기까지 존재했다.
일반인들과는 달리 효율적이지 못하고 보기 흉하다는 역겨운 이중잣대였다.
그러한 불행을 멈추기위해 팔과 다리를 그것과 유사한 외형의 기계로 대체하려는 시도가 이루어졌다.
물론 타인과 비슷하게 보이려는 겉치레에만 신경쓴터라 실용성은 미비했다.
인간과 기계의 결합(혹은 인공적인 무언가로 대체한것)이라는 개념이 확립되었다.
인공두뇌학의 Cybernetic와 유기체를 뜻하는 Organism이 합쳐져 사이보그가 탄생했다.
1843년, 에드가 앨런 포의 단편 중 하나, 소모된 남자(The Man That Was Used Up)에도 사이보그와 관련된 내용이 담겨있다.
그 단편은 몸이 보철로 이루어진 어떠한 남자에 대해 다루고 있었다.
1908년, Jean de la Hire의 공상과학 소설, '물 속에서 살수 있는 남자' 또한 사이보그에 대해 다루고 있었다.
1928년, 에드먼드 해밀턴 또한 자신의 소설, The Comet Doom에서 기계와 신체가 융합된 우주 여행자에 대해 다루고 있었다.
하지만 현실은 상상을 뛰어넘기 시작했다.
1969년, 미합중국의 MIT와 하버드 대학이 협력하여 'Boston Arm'을 개발했다.
이 의수는 스탠포드에서 개발된 제어장치와 컴퓨터를 이용한 전완의수에서는 동작지령 신호로서 환자의 어깨 움직임을 가능하게 했다.
근전의수의 시작이었다.
하지만 근전의수의 경우 근육에서부터 전기신호를 읽기에 실제 팔과 같은 정교한 움직임을 흉내낼수 없었다.
또한 팔이 통채로 절단된 인간의 경우 전달된 전기신호가 아예 존재 하지 않기에 사용에 어려움이 있었다.
2014년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신경에서부터 직접 신호를 받는 신형 의수가 개발되었다.
손가락에 해당되는 부분에 센서를 장착하고 감지된 정보가 전기신호로 변환, 컴퓨터를 거쳐 뇌가 인지하는 신호로 전환되어 촉각을 느낄수 있었다.
신체의 일부분이면서 원래의 신체가 아닌 기계를 가지지 않는 자들.
현대 기술력으로 목발과 휠체어의 의존하던 환자들을 다시 걷고 움직이게 해준 신비한 기계들.
인간이 신체를 기계로 대체하는것은 기술이 발달하자 원래 신체의 수준으로 도약하기 시작했다.
사이보그의 정의 또한 확장되기 시작했다.
인간의 대뇌는 유지하되 신체를 기계로 대체한 이들, 기계공학과 생명공학으로 신체를 강화하거나 대체한 이들
여러 창작물 매체에서 사이보그라 함은 대부분 신체를 기계로 대체하여 자기자신을 강화한 이들이라 표현했다.
공상과학 매체에서 인간과 비교하여 초월적인 신체적 능력을 가진 주인공이나 동료는 대다수가 사이보그였다.
이전에 언급했듯이 여성형 사이보그 또한 섹스 로봇의 일종으로 자신을 개조하여 성적으로 어필하는 것 또한 사이보그가 아니냐는 주장이 나타났다.
동시에 남성기를 다른 무언가로 대체해도 사이보그라는 분류는 피할수 없을것이다.
안구를 대신하는 의안, 팔과 다리를 대체하는 의수와 의족
하지만 여태까지의 것들은 그 형태만 본뜬것이지 실제 신체만큼의 기동성과 유연성, 정확성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 기술이 발달하고 인간의 각막을 따라잡는 기술까지 개발되는 시점에서 의수, 의족, 의안등을 똑같이 만드는건 시간문제였다.
이는 과학이 인간의 편의와 발전을 위해 사용되는 대표적인 예시로 이용되었다.
그런데 기술이 발전하고 불편했던 신체가 대체되면서 엉뚱한 생각이 인간들에게서 피어났고 그러한 현상에 한가지 패러독스가 제시되었다.
인간의 존엄성과 그 미래에 대한 모든것을 포괄한 질문이었다.
'신체가 계속 기계, 혹은 로봇으로 대체되면 오래 살긴하겠다만... 그게 인간인가 로봇인가?'
'순수 인간만의 전유물이었던것이 일부 인간, 일부 로봇에게도 적용되는 건가?'
약물을 이용해 신체를 강화한 이들도 사이보그라 처리되었고 이들은 곧 올림픽에서 박탈되었다.
약물의 이용으로 신체의 능력을 끌어올려 공정성에 훼손을 가했다는 이유였다.
플루타크의 내용 중 하나가 사이보그의 미래와 비슷한 내용을 가지고 있었다.
'태세우스의 배'라는 패러독스였다.
계속해서 뭔가를 바꿔나가면 그게 나중에는 원본의 그 물체와 동일한 물건인가라는 질문이었다.
인간이 과학을 도구로 사용함에 따라 이것에 대한 비판과 긍정 또한 발전했다.
인간은 육신은 필멸하지만 기계로 대체할경우 인간이라는 것을 초월한다는 트랜스휴머니즘은 영생에 대한 우리들의 욕망이 과학에 투영된것이다.
기술발전은 불가피하고 인간은 그에 적응해야한다는 이들.
지금 우리는 인간이고 그 인간의 본질을 해치지 않으며 그 한도 내에서 최대의 행복을 누려야한다는 보수주의자들.
인간의 고유함인 감정, 도덕, 윤리를 차가운 이성과 계산으로 바꾸려는 미치광이 시도를 멈춰야한다는 이들
어찌 인간이 신의 행세를 하려는지 묻는 이들
우리가 한걸음 앞서나갈수 있는것을 막는것일까 아니면 사전에 인간의 존엄성을 유지하는 첫단계일까?
한 매체를 예시로 들어보자.
인간은 멸종의 위협에 처했고 인간은 새로운 별을 발견했다. 그 별을 향해 우주선을 쏘아올린후 다시 되돌아와 지구인들을 구원해야 한다.
이제 그 별에 간 인간들은 두가지의 선택지가 존재한다.
인간의 순수성을 유지할것인가, 아니면 인간에서 다른 무언가로 개조해 생존해나갈것인가?
인간의 순수성을 유지한다면 본래의 의도에 맞게 인간을 구원하는데 성공했다.
인간은 멸종위기종에서 순수성을 유지하며 다시 번성하는데 성공했다.
인간의 굴레에서 벗어나 로봇으로 대부분을 대체하면 더이상 질병과 건강따위의 생물학적인 문제로 고통받지 않으며 구시대의 유물을 타파한다.
인간임을 벗어나서 '새로운 인류'로 지구인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주는것이다.
이제 거꾸로 판단해보자.
인간이 순수성을 유지한다면 다시 한번 인간들끼리 분쟁에 휩싸이리라곤 예상하지 않을수가 없다.
이제껏 분쟁을 일으켰고 새로운 지구에서 그러지 않는다는 가능성은 희박했다.
인간을 초월한다면 멸종위기에서 벗어날수있으나 자기 자신을 기계나 그 이외로 대체함으로서 더이상 지구인들과는 다른 인간이 되어버린다.
새로운 지구에 적응한다며 인간의 굴레에서 벗어나는것을 강요한다는 선민사상으로도 보일수있었다.
현재와 미래 시대에 인간이 신체를 대체함으로서 발생하는 호접지몽, 태세우스의 배와 같은 철학적인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게 되는것이었다.
물론 기술의 발전과 로봇의 발전은 아무도 막을 수 없다.
하지만 그에 맞춰서, 항상 변해가는 자신의 모습에도 익숙해져야 한다고 한다.
기술은 우리가 스스로를 바라보는 방법조차 바꿔놓고 있는것이다.
과학은 인간 쓰기 나름의 도구로 전락했고 과학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로봇은 그중에서도 가장 큰 관심을 이끌어내는데 성공한 것이었다.
우리에게 로봇과 기계라는 도구가 인간의 존재와 본질에 의문을 던지는 와중에도 사이보그는 여전히 발전중이다.
동시에 그것은 발전하면서 이러한 논란은 더욱 가속화되고 있기도 하다.
과학은 인간 쓰기 나름의 도구
인간을 구원할수도, 파멸로 이끌수도 있는 도구
기술만능주의가 팽배하던 벨 에포크 시대는 과학에 의한 번영은 매우 낙관적이었다.
나폴레옹 시대에 싸웠던 병사가 늙어서 자손들이 기차를 타고 프로방스 지방으로 바캉스를 떠나는 것을 보면 낙관주의가 자연스럽게 생겼다.
전쟁의 위협이 사라지고 과학이 모든 사회적 문제를 해결할거라는 믿음이 팽배해졌다.
물론 몇 십년후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그러한 믿음은 산산조각났다.
참호전과 독가스가 날아다니던 유럽
이카루스라 불리던 비행기는 전투기로, 아직 형형색색이던 보병들은 좀더 빠르고 강력한 기관총에 의해 끔찍하게 죽어나갔다.
차에 장갑을 두르고 보병을 방어한다는 전차, 바다속에서 활용된 잠수함
벨 에포크 시대와는 달리 과학은 이성의 미래로 가득찬 미래가 미치광이와 악몽으로 가득찬 전쟁을 악화시켰다는 비난을 피할수가 없었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악용은 끝나지 않았다.
우생학은 나치 독일의 총통, 아돌프 히틀러에 의해 악용되어 수백만의 유대인들이 학살되었다.
과학이 변질되어가면서 로봇 또한 변질 되어가기 시작했다.
자동적인 일을 하도록 고안된 기계에서 살인을 하도록 고안된 기계.
그런데 군사용으로 만든 로봇은 대체로 몇가지 문제점을 가지기 시작했고 인간보다 비효율적이라 여겨졌다.
어떻게 기동할것인가?
어떻게 전력을 공급할것인가?
어떻게 아군을 구별할것인가?
인간없이 판단하기란 매우 어려웠다.
그래서 우선 로봇을 이용해 인간을 보조하는 방식을 구상해보았다.
인간의 내골격처럼 바깥에서 도와준다는 의미로 Exo-Skeleton이란 이름이 붙여졌다.
1890년, 러시아의 니콜라스 얀에 의해 강화외골격이 처음 선보여졌다.
1960년, 미합중국 제너럴 일렉트릭사에서 Hardiman이란 강화외골격을 개발했다.
110kg의 물체를 4.5kg의 물체를 드는것처럼 느끼도록 도와주는 성공적인 로봇이었다.
허나 아무리 빨리 걸어도 1초에 두걸음을 나갈수 없는 680kg이라는 무게를 가지고 있어 그다지 인기를 끌지 못했다.
레이시온 사에서 2010년 XOS 외골격을 선보였다.
약 90kg의 무게에 달하는 물체를 들수 있었으나 내부동력원의 경우 30분밖에 이용할수없었다.
하지만 매우 진보적이며 미군은 이 강화복을 항공모함에서 항공기를 정비하는 용도로 사용하는것을 검토하고 있다.
록히드 마틴은 24kg의 HULC(Human Universal Load Carrier) 강화외골격을 개발했다.
91kg에 달하는 물체를 지탱할수 있으며 최대 8시간 운용이 가능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강화외골격은 한가지 문제점이 있었다.
얼마나 강화되고 개발되던간에 사용자는 전선에서 이걸 사용할것이며 아직까진 총에 맞아 죽을수있다는것이었다.
다른 방안으로 인간이 조종하는 로봇으로 설계안들이 제시되었다.
Unmanned Vehicle, 무인기였다.
이미 벨 에포크의 몰락을 가져온 1차 세계대전에서 무인기의 개발은 걸음마를 떼었다.
미합중국의 제너럴 모터스와 오빌 라이트, 전기공학자 찰스 F. 케터링의 합작품이었다.
180파운드의 폭약을 탑재하고 극초기형 태양전지로 전력을 수급해 75마일상의 거리를 비행해 적진을 공격하는 미사일이자 무인기였다.
허나 이건 인간이 조종할수없었고 무엇보다도 개발시기가 늦어 실전에 쓰이지 못했으며 로봇보단 극초기형 순항미사일에 불과했다.
2차 세계대전기 무선기술이 발달하자 무인기들이 개발되었다.
60kg의 폭약을 탑재하던 극초기형에서 최대 100kg의 폭약을 탑재하는 골리아트가 개발되었다.
500kg의 폭약을 운반하여 벙커, 토치카에 폭약을 설치하고 되돌아오는 보르그바르트 4호가 개발되었다.
중전차 티거나 안전한 벙커 내부에서 원격조종을 하여 조종하는 형식의 첫 UGV(Unmanned Ground Vehicle)들이었다.
나치 독일과 비슷하게 소련과 일본 제국도 이러한 병기의 개발에 열중했다.
드넓은 영토를 적은 인력으로 최대한 지켜야 하는 소련은 1930년부터 무선전차를 개발해 1939년, 실전에 투입하기 시작했었다.
각 기종마다 차이가 있었지만 대부분 500~1,500m의 송수신 거리를 가지고 있었고 대인살상력에 치중되어있었다.
일본 제국의 경우 트랙터를 개조해 탄약운반차량으로 쓰려던 '나카야마 전차'는 수많은 배터리와 무선기술의 부재로 별다른 빛을 보지못하였다.
1960년, 미합중국의 고고도정찰기가 소련 영공에서 격추되고 정보가 조종사를 통해 유출되자 미 국방부는 무인기의 개발에 열중하기 시작했다.
1964년, 통킹만 사건이 발생하고 미합중국이 베트남 전쟁에 개입하기 시작하자 무인기의 유용성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Ryan Model 147, Ryan AQM-91 Firefly, Lockheed D-21라는 무인기들이 대표적으로 월맹군과 북베트남을 폭격하는데 쓰였다.
1973년, 미 국방성은 동남아시아에서의 무인기 사용을 시인하며 그것들이 인명을 구했다고 주장했다.
인명이란 물론 미군을 뜻하는것이었다.
같은 해, 욤 키푸르 전쟁이 발발하고 소련이 이집트에 함대공미사일을 제공하기 시작하자 이스라엘 또한 무인기 개발을 서둘렀다.
이후 이스라엘은 무인기 개발의 선두주자로 무인기의 실시간 감시체계를 확립시키기도 하였다.
2010년, 미군은 유인조종사보다 무인기조종사가 더 많이 육성되고 있다고 발표했다.
공군은 그렇다 치고, 육군은 무인기에 대하여 박한것일까?
오히려 거대로봇이 나오는 만화영화와 영화들이 그러한 이들에게 자극이 되었다.
그 중 인간과 닮은 이족보행을 구사하는 로봇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전차의 궤도를 사용하는 대신 이족보행을 구사하는 로봇 개발이 진행되었다.
생각보다 쉽진 않았다.
초보적인 이족보행도 기계로 구현하자면 매우 힘들었다.
하지만 센서기술과 각종 소프트웨어의 발전으로 이족보행하는 로봇이 천천히 진행되었다.
미 합중국에서 인간의 발걸음을 구사하는 'Petman'을 개발했다.
발가락 관절과 기계의 안정화가 매우 어려웠지만 과학자들은 완성한것이었다.
하지만 절대로 경제성은 없었고 순수과학이론 및 기술실증기 이외의 용도는 없었다.
일본의 Asimo나 일본의 Asimo 개발에 질투를 느낀 한국이 3년만에 개발한 휴보와 같은 맥락이었다.
군사용 로보에서도 입증되었다시피 로봇에게 상황인식능력은 매우 떨어졌다.
로봇이 커질수록, 노면이 거칠수록, 발 크기가 작아질수록 로봇의 이족보행능력은 감소했다.
달리는것은 꿈도 꿀수도 없었고 가장 빨리 걷는것도 시속 9km에 불과한 이족보행로봇이었다.
결국 과학자들과 개발자들은 인간 외 사족보행동물의 움직임을 구현하기로 했다.
2008년, 사족보행하는 '빅 독'이 보스턴 다이나믹스사에서 개발되었다.
자이로스코프와 센서기술의 발달로 자연스러운 움직임의 구현이 가능하게 된것이다.
좀더 자연스러운 움직임의 빅독의 발전형, LS3가 소개되었다.
2013년, '와일드 캣'이라는 사족보행 동물의 움직임을 아주 비슷하게 구사하는 로봇이 개발되었다.
마술(馬術)에서의 갤러핑과 도약성능이 가능하게 되어 빠른 주행이 가능해졌다.
2015년, '와일드 캣'의 소음성능과 중량, 크기, 속도를 개량시킨 'Spot'이 소개되었다.
불쾌한 골짜기가 발현되기 바로 직전이었다.
이 '와일드 캣'이 공개되자 실제 사족보행 동물같다는 농담 반, 진심 반의 평을 들었다.
사족보행을 사용할 경우, 실용성이 이족보행로봇에 비해 월등히 높아졌다.
무게중심의 안정성은 군사용으로도 민간용으로도 무거운 짐을 운반할수 있었고, 유사시 인간을 태워 대피할수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왜 이런 무인기가 각광받기 시작한것일까?
경제적으로도, 군사적으로도 무인기가 가져오는 이점이 많았기 때문이다.
무인기 한 대를 날리는것과 최첨단 유인전투기를 날리는 비용을 비교하면 무인기가 월등하게 경제적이었기 때문이었다.
유인기는 인간의 탑승으로 인해 인간이 견딜수있는 중력의 한계를 벗어난 기동을 할수없었다.
무인기의 경우 기체만 파괴되겠지만 유인기의 경우 격추되면 기체값과 조종사, 조종사를 양성하는데 쓴 시간과 돈이 증발하는것이다.
이러한 기술의 발달은 많은것들의 무인화를 가져왔고 특히 전장에서 많은 병사들을 대체하기 시작했다.
물론 무인기라고 해도 인간을 완전히 배제할순 없었다.
인공지능의 기술은 초보적일뿐더러 민간인 오폭같은 윤리적인 문제점을 피하려면 인간의 개입은 불가피했다.
하지만 기술 초강대국이며 냉전을 이끌어나갔던 미국은 이러한 상황이 오리라곤 상상하지 못했다.
국가와 국가간의 총력전을 대비하기 위해선 적을 뛰어넘는 병기가 가장 중요했다.
소련 공군을 철저하게 짓밟기위해 YF-22 전투기를 개발했지만 이미 소련은 망해버렸고 20년후 배치되기 시작하며 별다른 적을 상대하지 못했다.
소련은 망하고 중국은 천천히 깨어나기 시작했지만 미군이 현재 상대해야 하는건 중동의 게릴라 부대였다.
소 잡는 칼로 닭을 잡을순 없듯 대당 가격 4억 4천만달러로 어느 작전에 함부로 투입할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런 공군의 내부에서 유지비와 대당가격이 유인전투기와 비교해 매우 값싼 무인전투기가 그 자리를 차지하기 시작했다.
미 공군은 유인기 조종사와 무인기 조종사간의 반목이 심화되고 있었다.
예로 2012년 공군사관학교 졸업생 중 절반을 넘는 숫자가 무인기 조종사이기도 하였다.
또한 현재 무인기 조종사는 1300명을 넘어가고 있다.
현재 미군이 감축을 시도하고 있는 가운데 무인기가 유인기의 자리를 위협하면서 유인기는 무인기에 대하여 경쟁성을 잃게 되는 것이다.
물론 무인기가 편한것만은 아니며 문제점 또한 아주 많이 내포하고 있지만 대다수 잘 알려지지 않은것이다.
무인기의 운용에 있어 인력의 증가가 필요했고 그러한 인력들은 화면속의 전쟁포르노를 접하게 되어 PTSD 혹은 초기 정신병 증세를 겪는다.
위에 서술되었다시피 아직 공군의 주류는 유인기 조종사이며 그들은 무인기 조종사들의 진급과 명예를 반대한다.
변화를 거부하는 문화가 이러한 현상을 만들기 시작한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