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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이 만든 역사 속에서는 단순한 것도 세계 곳곳으로 그 자취를 뻗어나가며 이윽고 장대한 연결고리를 형성했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세계적 규모의 사건들은 동물들의 열망으로부터 비롯되곤 했다
오늘 알아볼 주인공은 바로 소금(Salt)
지금부터 이 소금이 지닌 위대한 힘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자
알다시피 모든 동물은 소금을 필요로 한다
따라서 소금이 있는 곳에는 자연스럽게 동물들이 지나가며 그 흔적을 남긴다
소위 '소금 핥는 곳(Salt licks)'이라 불리는 흔적들을 말이다
선사시대 뉴욕에는 사람보다 버팔로가 훨씬 많았다
따라서 버팔로들이 거대한 떼를 지녀 다니기 일쑤였고 앞서 말했듯 이들 역시 소금을 필요로 하는 존재인지라 흔적을 남겼다
아직 국도가 건설되지 않았던 1960년대 이전의 북미 도로
지도를 살펴보면 알겠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도로 형성은 굉장히 엉성했다
이유인 즉 사냥꾼들이 소금을 핥았던 동물들의 흔적을 따라 길을 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훗날 이 흔적은 이리 호수(Lake Erie)로 연결되는 이리 운하(Erie Canal)가 됐다
더불어 이러한 까닭으로 이리 운하는 '소금이 만든 수로'로 불렸고
이곳의 지명은 현대의 미국인들에 이르기까지 줄곧 뉴욕 주의 버팔로(Buffalo)라 칭해졌다
이리 운하는 종착지를 허드슨 강(Hudson river)으로 하며 귀중한 소금을 운반하는 중요한 길로서 운용되었다
어떤 물자든 허드슨 강에 닿으면 곧장 뉴욕으로 이동이 가능했고, 그 뉴욕을 통하면 수로로 어디든 옮길 수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이로부터 운하는 오대호와 허드슨 강 사이의 무역을 활발하게 만들었고 부차적으로 허드슨 강 어귀의 항구들 또한 성행을 이루게 했다
뭐 결과적으로 보자면 대도시 뉴욕의 탄생엔 이리 운하, 나아가 소금의 역할이 상당히 컸던 셈이다
그리고 소금이 미친 영향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발자취는 미국뿐 아니라 세계 곳곳에 남아있다
우선 고대 로마 최초의 포장도로는 소금 운반을 위해 건설되었다
당시 '비아 살라리아(Via Salaria)'로 불렸던 이 길은 사실 '소금 길'이라는 뜻이다
이로부터 수 세기 후
마찬가지로 베니스(Venezia)는 소금을 운반하는 해상 운송 노선을 바탕으로
무역의 중심지가 되었으며 종래는 지중해의 해양 강국으로 위세를 떨쳤다
나아가 옛사람들은 소금의 소중함을 보다 잘 알고 있었기에
소금이 발견되는 곳이면 가리지 않고 일정한 이름을 남겨 나름의 표시를 했다
예로 '소금 마을'이라는 뜻을 가진 오스트리아의 잘츠부르크(Salzburg)가 있으며
영국에선 대표적으로 그리니치(Greenwich) 샌드위치(Sandwich) 노리치(Norwich) 등이 있는데
보다시피 지명이 '위치(Wich)'로 끝나는 곳들이면 모두 과거 소금을 생산하던 마을들이었다
자 이렇듯 이리 운하에서 영국의 소금 만드는 마을까지
오늘날 세계 곳곳의 지역들은 바로 소금에 대한 갈구로부터 형성되었다
30억 년 전
소금은 비에 녹으며 초기의 바다로 흘러 들어갔다
그리고 이 바다는 증발하며 거대한 소금 침전물을 남겼다
이후 지구의 유동지각은 바삐 움직이며 깊은 지하에 숨어있던 소금 평원에 습곡을 만들었다
그리고 이로부터 고대 바다의 남은 일부가 표면으로 드러나며 극히 일부분이지만 이것이 훗날 인류의 문명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지구 전체의 단 5%에 불과한 이 부분들이 근방 16km 내외의 지역에 자연 소금 공급원으로 작용하며 세계로 뻗어나갔던 것이다
사실 인간이 건설한 최초의 도시들은 물 공급원이 아니라 소금 공급원 옆에 지어졌다
자연 공급원이 없던 지역들은 그럼 어떻게 된 것이냐?
물론 자연 소금 공급원이 근방에 있으면 더할 나위없이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고 해도 딱히 문제될 것은 없었다
인간은 먼 과거부터 서로의 물품을 나누는 등 무역에 익숙했으니까 말이다
실제로 팀북투(Timbuktu)와 같은 소금 생산지는 무역을 통해 다양한 도시들과 왕래를 텄다
그리고 일단 이런 무역망이 형성되자 사람들은 소금뿐 아니라 다른 물자들도 함께 싣고 이동하기 시작했고
이내 무역로 곳곳은 활성화된 시장으로 시끌벅적해졌다
단지 과장을 보태면 당시 이들에게 있어 소금이란 특히 황금과 같이 귀했다고 한다
무엇보다 사람의 생명과 직결되는 중요한 생존 필수품이었기 때문이다
이렇듯 소금은 조용히 또다른 세계지도를 그려나갔다
다만 그에 그치지 않고 소금은 세기의 혁명적 사건들을 이끌어낸 하나의 중요한 요소로서도 작용했다
자 그렇다면 대체 인간에게 있어 이 간단한 분자가 뭐 그리 대단하단 말인가
그리고 인류는 왜 굳이 이 소금을 얻기 위해 오랜 세월 끊임없이 애써야 했던 것일까
30억 년 전
앞서 말했듯 세계는 거대한 바다로 뒤덮인 채
그 물은 약 35‰의 염분을 띄며 각종 원소와 광물이 뒤섞여 있었다
그리고 신비롭게도 이 혼합물 속에서 최초의 생명이 탄생했다
지구 역사에서 초창기 몇십 억 년 동안은 생물이라곤 오직 단세포 유기체뿐이었고 주로 바다에 살았다
하지만 생명은 긴 세월을 거치며 차차 진화해나갔다
대륙이 형성된 이후에도 생물들은 물과 소금에 의지해 여전히 바다 속에 머물렀다
그런데 그 중 일부 동물이 용기를 냈고 결국 육지에 첫발을 내딛었다
다만 이들 역시 번식기에는 항상 바다로 돌아가곤 했다
아직 완벽하게 진화하지 않은 상태에서 육지에서 태어날 자기 자손들의 생존을 위해 바닷물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들의 해결 방안은 바로 알(Egg)이었다
생명이 육지로 올라오기 시작했을 당시
조류나 파충류와 같은 생물들은 새끼 대신 딱딱한 껍질이 둘러싸고 있는 알을 낳았는데
이들은 바로 이 알 속 좁은 공간에 바다의 소금물을 보관하는 식으로 번식을 행했다
사실 이는 인간을 포함한 포유류를 봐도 어느정도 이해가 가능하다
양막 주머니가 있는 자궁을 떠올려보자
태아가 있는 공간은 양수로 가득차 있고 이것은 마치 작은 바다와 같다
결국 모든 생명은 소금물에서 등장했다
그리고 이들은 평생 생존을 위해 소금을 필요로 하며 살았다
아마 인간인 우리 조차도 소금이 없었다면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소금이 역사에 거대한 영향을 미친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박테리아부터 인간에 이르기까지 모든 유기체 즉, 세포는 소금이 있어야 작용한다
따라서 소금은 생명 자체의 핵과 같으며 우리 몸의 연결고리라 할 수 있다
인간의 눈물과 땀은 고대 바다의 염도와 그 수치가 같다
그리고 소금은 우리 정신도 지배한다
믿기 힘들겠지만 나트륨은 뇌세포 사이 신호 전달을 직접적으로 돕는다
이는 달리 표현하자면 우리의 사고가 소금으로 이루어진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도 뇌에서 벌어지는 대뇌 활성은 나트륨과 칼륨이 세포 안으로 들어갔다 나왔다 하는 과정이다
즉 의식은 본질적으로 소금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나아가 인간의 신체는 배고픔으로 음식이 필요함을 알리며 갈증으로 물이 필요함을 느낀다
자 그렇다면 소금의 필요성은 무엇으로부터 알 수 있을까
사실 인체는 우리로부터 하여금 쉴새없이 소금에 대해 갈망하게 만들며 이로부터 인간은 소금에 중독된다
이에 대한 증거로 우린 어느 누구도 소금이 먹고 싶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어찌되었건 간이 된 즉, 소금이 들어간 음식을 항상 갈구하는 것을 떠올리면 보다 이해가 쉬울 것이다
과학자들은 이러한 열망을 '소금 감각(Salt Sense)'이라 칭한다
그리고 여기에도 진화적 요인은 존재한다
몇몇 과학자들에 따르면 소금은 최초의 중독물이라고 한다
최근 이들의 연구에 따르면 소금에 대한 중독은 다른 여타 중독들의 원초적 기원으로 볼 수 있는데
이유인 즉 담배나 술 같은 것에 대한 인간의 집착은 결국엔 이런 생물학적 필수 중독의 연장선 상에 있는, 말하자면 부작용의 일부라는 것이다
이렇듯 인류의 소금 소비는 필수 불가결한 것이며 이는 머나먼 과거에도 마찬가지였다
기원전 200년, 1,000,000명 이상의 노동자들이 세계에서 가장 긴 방어시설을 구축했다
바로 만리장성(萬里長城) 말이다
만리장성은 완공만되면 중국 북쪽 국경의 4,800km까지 뻗어 나가며 흉노족을 비롯한 여러 유목민족들의 침략을 막아줄 것이었다
하지만 이처럼 거대한 공사를 치르며 황제는 노동자들의 임금을 어떻게 지불해야 지 큰 고민에 빠졌다
그리고 이를 지켜보던 신하들은 이내 영리한 해결책을 내놓는데
바로 '소금 세금(Salt Tax)'에 관련된 계책이었다
당시 진나라 경제학자들은 왕에게 말하길,
나라가 소금을 독점하고 장악하면 그 세금을 어느정도 인상함으로써 노동자들 임금에 대한 재원을 충분히 마련할 수 있다며 이를 시행토록 간언했다
소금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인간이라면 생명과 직결되리만큼 소중한 것이기에
감히 어느 누구도 세금이 오른다고 하여 소비를 포기하진 않을 거라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결국 예상대로 세금 때문에 소금값이 오르자 백성들은 분노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그리고 신하들의 계책대로 공사는 계속 진행되었으며 만리장성은 마침내 완공될 수 있었다
하지만 만리장성의 예처럼 소금 세금이 항상 긍정적 결과를 낳았던 것은 아니었다
1930년, 인도에서는 영국의 소금 세금 정책에 저항하는
마하트마 간디(Mohandas Karamchand Gandhi)의 행진이 있었고 결국 이는 인도의 독립으로 이어졌다
또한 1789년, 프랑스에서는 극한 소금 세금에 시달리던 민중의 인내심이 한계에 다다르며 이렇게 시작한 불만의 불씨는 또다른 불만들을 낳았다
그리고 소금에 대한 정부의 제재는 프랑스 혁명(Revolution Francaise) 발발의 원인을 일정 부분 제공했다
소금은 도시의 번영을 불러왔고 이를 통제하고자 했던 왕을 몰락시키기도 했다
이처럼 소금은 작은 결정체에 불과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거대한 영향력을 발휘해왔다
기원전 1213년, 이집트에선 출애굽기의 주인공이라 추정되는 그 파라오 람세스(Ramses II)가 죽었다
이집트 신앙에 따르면 시신이 썩기 전까지 이의 보존 처리는 영혼이 내세를 떠나기 위한 필수 과정이었다
그래서 이집트 인들은 '니트론(Natron')이라는 소금으로 시신을 처리하곤 했는데 이것이 바로 인류 역사상 최초의 방부제였다
여기서 재미있는 게 이집트 인들이 미라(Mummy)를 만드는 제조 과정을 지켜보면 이는 생선을 절이는 제조법과 무척 유사했다고 한다
당시 미라의 제조라 함은 내장을 제거하고 텅 빈 내부를 소금으로 채우는 것이 제조 과정의 전부라해도 과언이 아니었으니까 말이다
자 그렇다면 소금은 어떻게 방부제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것일까
그 비밀의 열쇠는 바로 게이들이 초등시절 한번쯤은 들어봤을 삼투현상(Osmosis)에 있다
음식물이나 사체를 썩게 만드는 것은 박테리아와 같은 미생물이다
그리고 이 미생물들이 영양분을 섭취하며 번식하려면 물, 즉 수분이 필요하다
다만 모든 생물의 세포막 내부엔 수분이 존재하기 마련인지라 그냥 내버려두면 이러한 미생물들의 번식은 걷잡을 수가 없다
하지만 소금을 뿌려두면 어떨까?
세포막을 반투과성 막이라 친다면 바깥 쪽에 뿌려진 소금 탓에
세포 내부는 저농도가 되며 그 수분은 모두 밖으로 빠져나가게 된다
즉 이렇듯 수분이 사라진 상태에선 부식을 일으키는 미생물이 죽게 되고
마른 조직은 몇달 몇년을 부식으로부터 버텨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제 인류는 소금의 힘이 주는 보존의 발견으로 보다 발전된 문명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소금은 다음 수확 때까지 음식물을 보존해주는 인류의 냉장고 역할을 했으며
당시 농경 사회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였던 식자재 보존에 대한 답을 제공했다
이는 여러 식자재를 가리키는 명칭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데
우선 소금에 절인 고기를 뜻하는 살라미(Salami)는 라틴어 'Sal' 혹은 'Salt'에서 파생되었다
더불어 소시지(Sausage) 소스(Sauce) 살사(Salsa) 등도 마찬가지이다
또한 소금은 음식도 사람도 살리기에 이로부터 구제(Salvage)란 단어가 파생되어 나오기도 했으며
소금은 무척 귀중한 것이라 로마에서는 군인의 월급을 소금으로 지급하곤 했고 여기서 월급(Salary)이라는 단어가 탄생했다
소금은 생존을 위해 없어선 안 될 것
그렇게 인간은 소금을 섭취하며 어떤 의미에서 '소금 중독자'가 되었다
나아가 이 작은 결정체는 도로와 운하, 도시를 건설했으며 음식을 보존함으로써 인간을 굶주림에서 구했고 신문명이 탄생할 수 있도록 했다
거시적인 관점에서 역사는 소금의 단순한 화학작용과 수분을 빨아들이는 작용으로부터 비롯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과학이 만든 역사로서 소금은 훌륭한 본보기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