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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 유례없는 초강대국 대청제국이 있었다.
역사에 유례없는 거대하고 강력한 중화제국을 건설한 것이다.
제국의 본토또한 당대 비교할만한 국가가 없을 정도로 광활했고, (러시아 제외)
그리고 주변 종속국(주황색으로 표기된 영역)까지 거느리고 있으니 말 그대로 세계 초강대국!
그리고 제국은 크고 부유하며 풍요로웠으니,
제국의 전성기에는 전세계의 30% 넘는 경제블록이
바로 대청제국이었다.
문화적으로도 시누아즈리(Chinoiserie)란 현상이 유럽을 강타할 정도로
저 멀리 떨어진 유럽인들마저도 동경하고 가고 싶었던 사상 초유의 초강대국 문화 강국!!!
대청제국에서 왔다고 하는건 언제나 호사가들의 입에 오르락내리락 거렸고, 유럽 왕실과 귀족은
대청제국에서 똥을 쌌다고만 해도 호들갑 떨면서 찬사하기에 바빴다.
유럽에는 또 대청제국의 똥을 받아먹고 싶어하는 나라가 있었으니
그 이름하여 그레이트 브리튼. 대영제국이다.
똥송한 인도도 짓밟아서 쳐묵하고 있는중이고 더이상 아-태 지역에서 대영제국에 개길만한 나라는 없었다.
어떻게든 대청제국의 똥을 독점적으로 받아서 유럽에 비싸게 통수치고 싶었다.
그래서 대청제국의 수도에 가서 황제를 알현하고 이것저것 앙망했지만.
대청제국은 오랑캐 대영제국의 물건따윈 필요없었다.
18세기부터 19세기 초까지 대영제국에서 대청제국으로 유입된 은화는 4200만냥이상
대영제국은 대청제국에 물건을 팔아보려고 했지만, 원조 천조국은 그딴게 필요가 없었다.
무지막지한 인구로 인해서 초기 산업혁명의 산물조차도 가격경쟁력에서 밀렸기 때문이다.
과연 천조국.
중요한건 대청제국에서 생산되는 차들은 이미 대영제국에서 없어서는 안될 물건이 되어버렸고,
19세기 초 일반 영국가정의 소비액 5%가 차 구입에 이용될 정도로 이미 경제적으로 종속되어 가고 있었다.
인도를 쳐묵하느라 엄청난 재정적인 적자에 시달리는 영국 동인도 회사는
저렴한 인도산 면화를 청나라에 팔아서 그 재정적자를 타개해보려고 했으나..
원조 천조국은 그딴거 없당 청 제국 본토에서 면화생산에 들어가자
그 광활한 인도에서 생산되는 면화마저도 가격경쟁력에서 상대가 안되는...
결국, 대영제국의 선택은 아편!
그렇게 청제국과 대영제국의 무역수지는 역전되서
대청제국의 은자 유출은 한해 7천만냥이 넘어감 ㅋ
하지만 대청제국엔 명신이 있었으니
호광총독(湖廣總督) 임칙서.
그는 보기 드물게 대외의 정세에도 눈을 돌려
에머리히테 바텔(Emerich de Vattel)의 저서 국제법(Law of Nation) 같은 유럽의 서적들도
번역해서 읽으면서 그가 상대해야할 적들에 대해 파악해갔다.
심지어 대영제국의 수장 빅토리아 여왕에게 일갈하기까지!!!
우리는 당신의 나라가 이곳에서 6~7만리나 떨어져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럼에도 이적의 배가 무역을 하기위해 이곳에 오는 것은 이곳에 큰 이득이 있기 때문입니다.
(중략) 즉, 당신들이 가져간 부는 모두 중국인의 정당한 몫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무슨 권리로 중국인을 해치는 약을 사용하는 것입니까?
그들이 고의로 우리에게 해를 입힌게 아닐지언정 탐욕스럽게 이득을 갈구하는 그들은 타인을 해친다고해도 상관하지 않을것입니다.
질문을 허락하신다면 묻겠습니다.
당신의 양심은 어디에 있습니까?
-임칙서가 빅토리아 여왕에게 보내는 편지의 일부.
하지만 임칙서의 뜻대로 정국은 돌아가지 않고..
대영제국은 결국 자국의 무역보호를 명목으로 대청제국 침공을 결정하게 된다.
하지만 의회에서부터 많은 반대에 부딪혔고..
부도덕한 전쟁이라고 영국인들 스스로 한탄했다.
그리고 그 승부마저도 알 수가 없었는데..
48척의 함선과 4천여명의 병력의 대규모의 동방 원정대가 구성되어 떠났다.
청군은 대영제국군한테 처참하게 박살이 나버렸다.
영국군은 파죽지세로 청군을 학살하고 닥치는대로 약탈과 방화 강간을 일삼았다.
그리고 모두가 알았다.
원조 천조국은 개뿔
걍 덩치만 큰 뜯어먹을거 많은 병신 호구라는걸.
그야말로 전세계인의 착각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전통적인 중화사상에 입각하여 청나라에 종속되거나 영향을 받던 주변 아시아 국가들에게도
그 영향이 갈 수 밖에 없었는데......
청나라가 허벌나게 밟힌 아편전쟁이 끝난지 불과 7년만에
청나라의 동쪽 바다건너 한 섬나라에서는 발빠르게 정보력을 총동원하여 위대하고 거대한 대청제국을 개박살 낸
서양의 양키 오랑캐새끼들에 대해서 조사하기 시작한 결과물을 내놓았다.
이 책은 일본인이 1849년 출간한 해외신화(海外新話)란 책이다.
이 인물은 미네타 후코란 인물로 뭔가 해외에 대단한 커넥션이 있다기 보다는
난학(네덜란드의 학문)을 배우긴 했지만 오히려 씹선비 유학에 더 조예있는 인물이었다.
(해당 서적에 실린 영국군함 삽화)
일본인들은 신속하게 위대한 대청제국을 박살낸 정체모를 양키들에 대해서 조사했는데,
상당히 내용은 디테일했다. 다음은 책 내용 중 일부이다.
제 1장 - 영국에 대한 관략한 소개
영국은 서유럽에 위치한 강대한 국가이다.
중국인들은 다양한 단어로 잉글랜드를 표기하는데 최근에는 저들을 영국금수라고 지칭하고 있다.
잉글랜드 북쪽에는 스코틀랜드라는 국가가 있다.
스코틀랜드는 본래 오랫동안 독립국가였으나 앤 여왕이 재위하던 1707년 당시 합병되었다.
이는 잉글랜드 서부에 위치한 아일랜드도 마찬가지이다. 이를 통해 '그레이트 브리튼'이 되었다.
이 왕국은 52개의 주로 구성되어있고 62명의 제후들이 다스린다.
(중략)
영국의 해안은 높은 암벽과 암초, 그리고 사나운 해류 때문에 접근하기 어렵다고 한다.
이 때문에 이웃국가들은 침공하는 것을 포기할 수 밖에 없다고 한다.
심지어 세계를 정복하고자 했던 프랑스란 나라의 위황(爲皇) 나폴레옹이란 자처럼 대단한 여웅도 영국에 대한 침공을 포기해야 했다.
(중략)
영국의 수도는 런던이다. 템즈강 옆에 위치해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으며 집들은 빗살처럼 촘촘히 위치해있다.
거대한 다리가 강을 가로지르는데 넓이가 9미터, 그리고 길이가 405미터에 달한다.
또한 세 개의 가로등이 밤에 보행자들의 길을 비춘다. 강가에는 포대기가 비치되어 있어 방비를 튼튼히 하고 있다.
또한 세계 곳곳의 상인들이 곡물, 광물, 직물 등 수많은 상품들을 거래하는 시장도 곳곳에 위치하고 있다.
영국 수도의 인구는 105만명에 달한다. 대학은 두 개이며, 수천의 학생들이 거기서 공부한다.
영국의 여자들은 지나치게 헤프며 순결함에 대한 생각이 없다고 한다. 런던의 평민은 매일 술을 마신다고 한다.
여인들은 서로 남자를 꼬시기에 바쁘며 만족을 모르는 남자들은 여자들의 열정을 활용한다.
(중략)
영국의 상선은 28,080 척에 달하며 이를 관리하기 위한 관료들은 185,000 명에 달한다고 한다.
왕실에는 100척의 함선이 소속되어 있으며 각 함선마다 40개에서 120개의 포문이 부착되어 있다고 한다.
영국의 깃발은 적색, 청색, 그리고 백색인데 그 중에서 적색을 가장 숭상한다.
(중략)
인도에는 124척의 영국 군함이 잇다. 그리고 4,000 명의 관료들이 주재하고 있다.
현지에서 징집된 대규모 군대(세포이)도 있다. 영국은 18~45세 사이에 있는 남성 일곱에 하나를 징집한다.
(중략)
모든 서양의 야만인들 중에서 영국이 가장 막강하다.
약소국은 정복해버리며, 보다 강한 나라를 상대할 때에는 상대가 완전히 지칠때까지 물고 늘어진다.
그리하여 지금의 세계에는 영국의 지배를 받는 땅이 하늘의 별처럼, 그리고 평야의 초목처럼 많다.
자국의 방비를 하고자한다면 영국을 결코 저 멀리 있는 서양 야만국 중 하나로 생각하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런 일련의 지식인들의 움직임은 2년 뒤, 1851년 쿠로후네 사건(미국 페리 제독 방일) 때,
막부가 개항하는데 어느 정도 일조를 했고, 이미 서구 열강들에 대해 사전에 정보를 가지고 있던 일본 지식인들은 비교적 유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었다.
이런 일련의 일본 지식인들의 움직임은 쿠로후네 사건 이후 메이지 유신으로 이어지는 좋은 밑거름 중 하나가 되었고,
근세에 유일하게 유럽의 식민지가 되지 않고 열강의 반열에 오른 아시아 국가라는 영광을 차지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런 일본보다 훨씬 더 유리한 입장에 있는 국가가 있었는데,
피떡갈비가 된 청나라 수도 북경에서 가장 가까운 위치한 나라.
바로 조선이었다.
지정학적으로 청나라와 가장 소통하기 쉬우며,
청나라에 가장 원한이 깊어서 외부의 소식에 가장 민감할 것 같은나라!!!!!!!
바로 조선! 이라고 생각했지만,
조선에 들어오는 소식은 없었다.
별로 관심도 없었고.
아편전쟁이 끝나고 좀 지난 뒤에나
조선의 정보원들이 소식을 보내오기 시작하는데...
'대청제국이 서양 오랑캐 영국을 토벌했다'
하지만 조선에 천운이 따랐는지 일본인이 저런 책을 쓰기 2년전인 1847년
프랑스의 군함이 조선을 침공하기 위해 오다가 좌초되서 조선인의 도움을 받고 중국으로 돌아간 사건이 있었다.
그때, 프랑스인들은 한가지 정보를 조선에게 알려주는데.....
'야, 너네들 영국이 토벌된걸로 알고 있지만. 사실은 영국한테 씹강간 당했당께. 우리도 중국한테 쪽쪽 빨아먹고 있당께. 너네가 잘못 알고 있는거다.
도와준 덕에 한 가지 알려주고 간당께!'
이는 조선 정부와 주요 고관들과 양반 선비들에게도 널리 퍼졌고...
조선 정부는 일본보다 훨씬 앞서 서구 열강에 대비할 기회가 생겼는데!!!!!
씹선비 : 허허허 구라즐 ^오^
좌초된 프랑스 함선이 왜 '프랑스로 돌아가지 않고 중국으로' 돌아가는지 그 이유조차 관심도 없었던
조선이었다.
서로 다른 반응을 보였던 두 나라간에 격차가 보여준 효과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양국의 정보력 차이와
들어온 제한적인 정보에 대한 반응은
두 나라의 운명을 결정하고 동아시아의 운명을 바꿔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