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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26년 10월 5일, 날씨(맑음).
명나라가 멸망한 지 어연 100여 년의 시간이 흘렸다.
조선의 군주인 영조 대왕과 관료들은 중국의 정세와
명나라 멸망의 원인 등에 대해 진지하게 논하는 자리를 가졌다.
이하, 조선 시대 기록의 산물인『승정원일기』의 내용을 재구성한 것이다.
"성상(임금을 높이 부르는 말)께오서 경연관으로 입시하셨으니, 입시하시오!"
"성상 전하께서 들라한 연유가 무엇인가?"
"중국의 역사와 정세 등에 대해 논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성상 전하, 천세를 누리시옵소서! 헌데 저희들을 부르신 연유가 무엇이옵니까?"
왕이 웃으며 말하기를,
"과인은 오늘 경들과 자리를 함께 해, 천하의 역사와 정세 등에 대해 논하고 싶소이다.
이와 관련하여 경들의 생각을 말해보오."
한원진이 아뢰기를,
"신은 오랑캐를 막는 데 있어서의 중국의 실책과 과오에 대해 진술하고자 합니다.
진나라 시황제가 천하 백성들의 힘을 모두 짜내어 장성을 축조했는데,
그 자신을 위한 계책으로는 진실로 어리석은 일이었으나
축성된 장성은 후세에 오랑캐를 막는 방도에 실로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렇다."
"따라서 중국 변방의 방비는 장성을 경계로 땅을 차지하러 나가지 않고, 관문만 굳게 지키면
오랑캐가 변방을 침입하여 근심거리가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후세에 오랑캐를 막는 중국 왕조는 굳이 땅을 차지하러 장성을 넘었고,
쓸모없는 땅을 지키기 위해 천하의 병력을 다 소모하였으며,
날로 오랑캐와 함께 종사하여 오랑캐로 하여금 중국의 약점과 흥망성쇠를 알게 하였습니다."
"결국 중국이 강하면 장성을 넘어 오랑캐를 제압할 수 있었지만,
중국이 쇠해지면 오랑캐가 그 틈을 타서 장성을 넘어 중원으로 들어오게 되었으니,
이것이 중국의 첫째 실책입니다."
"그렇다면 중국의 그 다음 실책은 무엇인가?"
"평지에서 보병을 제압하는 것엔 기병만한 것이 없고,
기병을 제압하기에는 전차만 한 것이 없습니다.
한나라 이전의 중국은 모두 차전(車戰)을 익혔습니다만,
삼국 시대를 거치면서 중국의 차전 제도는 쇠퇴했습니다.
그 후로는 오랑캐의 기병이 장성을 넘어 중원을 질주하며 유리한 형세(5호 16국)를 차지했고,
중국의 북쪽을 점거하자, 이번에는 중국의 기술을 써서 남쪽까지 정복(원 · 청나라)했습니다.
이것이 중국의 둘째 실책입니다."
"물론 당나라 이전에는 변방의 병력이 강하여 외적을 막아내었습니다.
그러나 송나라는 무장들의 권한을 모조리 빼앗아 변방이 비게 되어 외적을 막을 수 없었고,
오랑캐의 기병이 닥치면 무인지경을 달리듯 바로 황성 아래까지 이르렀습니다.
한나라 이후 중국의 주인들은 이것을 알지 못하였으니,
참으로 한스러운 일입니다."
"상세히 논하였다."
"생각해보면 북송을 멸망시킨 금나라는 참으로 한심스럽습니다.
금나라가 원나라와 강화를 맺었을 때, 원나라군이 만리장성을 나갔음에도,
금나라 임금은 원나라군이 다시 들어오지 못하도록 만리장성을 닫지도 않았으며,
수도를 변경(汴京)으로 옮겨 피하기에만 급급하여 화북의 땅을 모조리 방치했으니,
이러고서야 제국을 보존할 수 있었겠습니까?
게다가 변경(汴京)은 사방이 적을 맞이하는 지형으로서,
북송이 이로 인해 멸망했음을 금나라가 모르는 바도 아닐텐데,
금나라가 결국 이를 경계할 줄을 몰랐으니 얼마나 어리석습니까?
당시 금나라 재상인 도단일이 금나라 임금에게 이것을 말했는데도
금나라 임금이 따르지 않아 끝내 제국이 멸망했으니,
후대의 왕들은 교훈으로 삼아야 할 대목입니다."
"매우 좋은 말이다. 헌데 오랑캐의 임금이라도
새 제국을 창업할 때에는 또한 하늘의 도움이 있는 것인가?"
김용경이 아뢰기를,
"오랑캐의 임금이라도 창업할 때라면 어찌 또한 하늘의 도움이 없겠습니까?"
한원진이 아뢰기를,
"당시 송나라 황제는 어리석고 용렬하여 사람을 쓰는 일에도 어두웠습니다.
하늘이 오랑캐로 하여금 중국으로 들어와 주인이 되게 하고자 했으므로,
바로 일의 형편이 그와 같았던 것입니다.
따라서 하늘의 이치가 이리되는 것에 대해서는 실로
알 수 없는 점이 있습니다."
"원나라가 창업한 것에는 하늘의 도움이 있었던 듯하다.
송나라가 만약 덕을 닦았다면 하늘이 어찌 버렸겠는가?
송나라를 일으켜 세울 수가 없었기에 원나라를 돕게 된 것이니,
어찌 유감스럽지 않은가?
"성상 전하의 하교가 지당합니다.
송나라가 중국의 도리를 더 이상 할 수 없게 되었으니,
금나라와 원나라가 없었더라도 어찌 다른 오랑캐에게 멸망하지 않았겠습니까?"
"북송이 금나라와 화친하여 요나라를 멸하더니 결국 북송도 망하고,
남송이 원나라와 화친하여 금나라를 멸하더니 결국 남송도 망했습니다.
이는 사리로도 옳지 않을 뿐 아니라 이해도 잘 모르는 것입니다."
"송나라는 참으로 어리석은 왕조입니다.
대개 적국이 서로 다툴 때는 우리의 힘이 두 나라를 상대하기에 족하면
먼저 약한 나라를 취한 뒤에 강한 나라를 취하고,
우리의 힘이 두 나라를 상대할 수 없으면 약한 나라를 도와
강한 나라를 억제하여, 강한 나라가 약한 나라를 합병한 뒤
우리까지 합병하는 상황이 오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이것이야말로 적을 제어하여 나라를 보존하는 정책인데도,
북송이 앞에서 망했어도 남송은 교훈을 삼지 못하고
다시 그 전철을 밟았으니, 이것은 매우 개탄스러운 일입니다."
"맞는 말이다. 헌데 한나라와 송나라는 중흥(부활)하여
100여 년 이상의 국가의 기업을 연장할 수 있었으나,
명나라는 끝내 중흥하지 못한 것은 무슨 까닭인가?"
"한나라 고조는 진나라의 포악한 형벌을 악법삼장으로 대체하고
관후하고 인자한 덕으로 나라를 세워 인심을 결속시켰고,
그리하여 한나라가 비록 중간에 망했어도 사람들이 한나라를 다시 그리워하여
얼마 안 가서 중흥한 것입니다(후한 시대).
송나라도 인후한 덕으로 나라를 세우고 의리를 크게 밝혔으므로,
그 힘은 병력의 약함을 뛰어넘었습니다.
그리하여 요나라와 금나라가 강성했을 때에도 송나라를 망하게 하지 못했고,
원나라 태조의 강함으로도 송나라가 쇠퇴했음에도 단번에 멸망시키지 못하고
4세나 지난 원나라 세조에 이르러서야 통일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송나라의 군사와 백성 수만 명이 애산 해전(송나라 최후의 전투)에서
한 사람도 흩어지지 않고 같은 날에 죽었습니다.
이는 실로 송나라가 인후함으로 나라를 세워 인심을 굳게 결속하였고
의리를 크게 밝혔기 때문이니, 나라를 가진 자라면 정사를 인후하게 하고
의리를 밝히도록 힘쓰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명나라는 정령이 엄하고 살육을 좋아하여 인후함을 갖추지도,
인심을 굳게 결속할 수 없었으므로, 한창 왕성할 때였는데도
일개 유적(이자성)을 만나자 적이 온다는 소문만 듣고도 도망쳐서 마침내 망하게 되었고,
망한 뒤에는 백성들이 모두 잊어버리고 다시는 그리워하지 않았으므로
또한 다시 일어나지 못한 것입니다."
"게다가 명나라 수도 북경은 오랑캐 땅에 바짝 다가가 있습니다.
아마도 오랑캐에게 가까이 접근하여 제압하고자 한 것일 테지만,
후세에 나라가 쇠퇴하게 되면 오히려 오랑캐에게 쉽게 핍박당할 수 있는 것을
깨닫지 못한 매우 어리석은 처사입니다.
이래서야 어찌 근본을 튼튼히 하고 오랑캐에 대비할 수 있겠습니까?
실제로 명나라 영종 황제가 토목의 변에서 에센 군대의 포위망에 빠져 포로로 잡혔으니,
이것이 역사가 증명하는 증거입니다!"
"지금 명나라가 망한 지 거의 100년이 다 되어 가는데도
소식이 없으니, 어찌 부흥할 수 있겠습니까?"
설사 주씨(朱氏 : 명나라 황제의 성씨)가 부흥한다 해도
어찌 한나라와 송나라의 중흥에 비견할 수 있겠습니까?"
"물론 명나라가 우리를 도운 은혜를 생각하면, 명의 부흥을 기대하기도 하나,
시세로 볼 때 어찌 일말의 희망이라도 있겠습니까?"
"조금 전에 과인이 오랑캐(청나라)가 창업했다고 표현했지만
'입주중국(중국 천하의 주인이 되다)'로 고쳐라.
오랑캐는 천하를 차지할 수밖에 없었고, 이는 하늘이 도운 것이리라.
명나라가 망한 것도, 청나라가 중국의 주인이 된 것도 다 필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지금 청나라는 중국 천하를 다 차지했는데도,
천하의 진귀한 보화를 자신들의 발원지인 영고탑(만주)으로 보내
훗날 돌아가 의지할 곳으로 삼고 있으니,
그 사려가 매우 깊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는 저들이 근본이 되는 땅을 잊지 않은 것이다.
아아! 저들은 비록 천하를 차지하였으나
근본을 공고하게 해야 함을 잊지 않았다.
그 계책이 참으로 깊다고 할 수 있겠다.
우리나라는 딱히 믿을 곳이 없는 데도 스스로 힘쓰는 정책을 행하지 못하니,
어찌 부끄럽지 않을 수 있으리오!"
“금나라 임금이 외적을 피하고자 도읍을 옮긴 실책에 대해 신이 이미 아뢰었는데, 이는 우리나라로서는 더욱 경계해야 합니다.
임진왜란, 정묘호란, 이괄(李适)의 난, 병자호란 때 도읍을 옮긴 것은 모두 도읍을 빈(邠)으로 옮겼던 계책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러므로 국인(國人)들은 이를 당연시하고 만약 위급한 상황이 생기면 또 도읍을 옮겨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근본이 되는 땅에서 인심이 불안하다면, 이는 매우 우려할 만합니다. 왕성(王城)의 수비는 본래 한 성의 험준함 여부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옛말에 ‘천자는 사방의 오랑캐로 호위를 삼고, 제후는 사방의 국경으로 호위를 삼는다.’라고 하였습니다. 사방의 국경이 무너지면 왕성은 지킬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산동(山東)이 모두 반기를 들자 진(秦)나라는 함곡관(函谷關)을 보전할 수 없었고, 병력이 한중(漢中)으로 들어오자 촉(蜀)나라는 성도(成都)를 지킬 수 없었습니다.
이것이 어찌 지형이 덜 험준해서 그러했던 것이겠습니까.
왕성 말고는 모두 적에게 무너지고 적병이 성 아래에까지 닥치니, 인심이 먼저 동요하여 다시 진정시킬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왕의 거처란 한 성의 험준함을 따지지 않으며, 단지 사방을 통제할 수 있고 강과 산이 중첩된 곳이면 좋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성은 남쪽으로는 한강(漢江)이 흐르고 북쪽으로는 홍복산(洪福山)을 의지하며, 서쪽으로는 임진강(臨津江)과 송악산(松嶽山)이 있습니다.
그 지세의 웅장함이 실로 이보다 나은 곳이 없는데도, 만약 경성을 버린다면 임진강 이북은 다시는 우리의 차지가 될 수 없을 것입니다. 이러고서야 나라꼴이 될 수 있겠습니까.
경성을 보전하고자 한다면 마땅히 서북 지방의 여러 도(道)에서 지켜야 합니다.
동선령(銅仙嶺)에서 저지하고 청석곡(靑石谷)에서 막는다면 오랑캐의 기병도 어찌 깊이 들어올 수 있겠습니까. 병자호란 때는 오랑캐가 막 천하에 뜻을 두어 우리나라가 혹 그들의 후방을 도모할까 두려워하였으므로 의표를 찔러 화맹(和盟)을 강요하여 후방의 근심거리를 없애려 하였던 것이지, 본래부터 우리의 땅을 원하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군대가 고립무원으로 험준한 곳을 넘어 적진 깊이 들어가는 것은 실로 위험한 방도이므로, 뒤에 감히 또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지금 이후로 오랑캐가 침범해 온다면, 그들의 국토가 예전과 같지 않으므로 오직 땅만을 원할 것이고, 상황상 반드시 먼저 주현(州縣)부터 차지하려 들지 빠르게 치고 들어오는 계책을 쓰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때가 되면 요해처를 나누어 지키며 그들의 예봉을 막는다면 어렵지 않게 제압할 수 있을 것이고, 계책을 미리 정해 둔다면 일이 닥쳤을 때의 조치도 여유가 있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도 동선령과 청석곡에서 막을 줄을 모르고 적을 지나가게 한 뒤에 ‘경성이 불안하니 피하여 다른 곳으로 가겠다.’라고 한다면, 어디를 가든 오랑캐가 어찌 따라오지 않겠습니까. 상황상 더 피할 곳이 없는 지경에 이를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 대해 반드시 먼저 아셔야 합니다.”
"모두 좋은 말이로다!"
"성상 전하! 신은 적을 막아 나라를 지키는 계책이 이렇다고
범범히 논할 것일 뿐입니다."
하고, 신하들이 차례로 물러 나갔다.
『승정원일기』영조 2년 병오(1726, 청 옹정 4)
10월 5일(계해) 맑음.
+ 조선 시대 사료인 승정원일기는 조선왕조실록보다 더 많은 방대한 분량을 차지하며,
기록이 너무나도 방대하여 아직도 완전히 해석되지 않았다. +
<한국과 중국 역사서의 분량, 한자 숫자>
[중국] 사고전서 79,582권 : 5억 3125만 자
[중국] 영락대전 22,937권: 3억 7000만 자
[한국] 승정원일기 : 2억 425만 자 (1623~1910년)
+ 1623년 이전, 그러니깐 조선 초기와 중기의 기록은 임진왜란과 여러 변란으로 소실됨.
[한국] 조선왕조실록 : 6400만 자
[중국] 대륙 25사 : 3996만 6383자
- 3줄 요약 -
1. 조선의 관료가 생각한 명나라 멸망의 원인
2. (유교적 관점) 덕치가 부족했고, 인후하지도 못했으며, 살육을 좋아해 인심이 떠남.
3. (현실적 관점) 수도가 변경에 근접하여 근본이 튼튼하지 못해 국력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