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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

삽질하지 말고 노력하자

과정 2017. 5. 18. 07:38

제로성장시대, 

젊은이들 죽도록 일해도 제 집 가지기 힘들어, 

노력해 봤자 부모세대 처럼 살기 힘들어.


요즘 한국에 사는 젊은세대들이 매일 듣고 보는 뉴스나 기사들이다.

니들의 미래는 희망이 없고 

사회는 썩었으며

아무리 노력해도

너희들에게 행복은 찾아오지 않는다.

그래서 어쩌라고?

나라를 뒤집고 혁명을 일으켜

노동자 농민이 공평하고 평등하게 살수있는

사회를 만드는것이 공익이라고 말하는

그런 나라에서 니들은 크고 있다.


그런데 원래 인간은 평등할래야 할수가 없다.

나는 죽어라 암기하려고 노력해도 외어지지 않는 단어들인데,

어떤 새끼는 한번 쑥 보고 나면 사진 처럼 외는 놈들이 반드시 있다.

내가 아무리 점프를 훈련하고 노력해도

니가형님이 오셔서 함 코트에서 몸 풀고 가시면

나는 지금까지 모하고 살았나 절망 속에 빠질수 밖에 없는것이 우리들의 "현실"이다.

이것은 너네 부모님, 할배, 전세계 누구나 똑같이 겪는 평등한 현상이다.

돈이 밀리언이 있다고 해도 안되는건 안되는거다.




사람은 자기가 잘하는 것을 해야 한다.

내가 잘하지 못하는것을 내가 죽어라 해봤자 그것은 삽질일 뿐이다.

노력이란,

"분석"과 "실험" 그리고 마지막으로 "기회"의 변수로 만들어지는 복합적 완성체이지

아무 생각없이 하는 반복되고 기계적인 행위를 하는 삽질이 아니다.

금수저라고 이와 같은 3가지 요소를 무시하고 돈을 뿌려 댔다간

집안 말아먹기 쉽고 실제로 그러한 경우는 허다하다.


누구든.

성공을 꿈꾼다면 지금 들려주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어보자.

그리고 무엇이 "노력"인가 되새겨 보자.


첫번째 이야기를 시작해 본다.





탐 숄츠


탐 숄츠에 관한 이야기는 한국에서 듣기 힘들다.

대부분 한국의 블로그에서 다루고 있는 그의 이야기는 

상당수가 틀렸거나 그의 성공만을 다루고 있다.





1. 어린 시절

1947년 오하이오에서 태어난  탐 숄츠는 모델 키트를 가지고 노는것을 좋아하던 아이였다.

고카트를 조립하고 전자석으로 모터를 만들어 스스로 장난감을 만들기를 좋아했다.

나중엔 비행기 모델을 조립하는 취미로바꾸기도 했다.

애초에 탐은 머리가 좋은 아이였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자기가 좋아하는것을 계속하는것이 탐의 꿈이었다.




2. 공학과 소리

기계나 무엇인가를 만드는것을 좋아했던 탐은 MIT에서 산업공학을 전공하고 

폴라로이드 회사의 프러덕트 디자인 엔지니어로의 삶을 살게된다.

탐은 음악에 전혀 관심이 없었던 직원이었지만,

폴라로이드에서 개발 중이었던 아날로그 장비들에 들어가는 사운드 시스템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전자기기로 만들어지는 소리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전자회로를 통해 들려오는 새로운 소리에 

탐은 와 이거 재미난 기계를 만들수있겠다란 영감을 가지고

자기 집의 지하실에서 전자기기들을 모아놓고 나만의 소리를 만들기 시작한다.


엔지니어링이 음악과 만나는 순간이다.

이때 탐은 단순히 밤새며 기타질만 하는  "삽질"로 음악을 한것이 아니라,


사람에게 들려지는 음악이란 무엇인가

소리의 물리적 원리는 무엇인가

인간은 소리를 어떻게 듣는가등


대부분의 음악가들은 하지도 보지도 않는 

원리적인 공부들을 집중적으로 하게 된다.

내가 어떠한 일에 미치고자 한다면 

그 기초되는 지식을 보지 않고는 

미쳐볼수가 없기때문이라고 그는 말한다.


이렇게 탐은 낮에는 회사에서 일하고 밤에는 집으로 돌아와 

음악에 대한 철저한 "분석"과 

새롭게 만들어지는 사운드의 "실험"으로 

드디어 자신만의 데모 뮤직을 만들어낸다.

탐은 6살때 잠깐 배운 피아노가 그가 아는 음악의 전부였다고 한다.




3. 도전 그리고 실패 그러나 기회

이렇게 만들어진 데모를 탐은 유명한 레코드 회사에 보내기 시작한다.

새로운 소리로 가득찬 음악에 세상이 놀랠것이다 믿고 보낸 데모에 대한 레코드 회사들의 반응은

시큰둥이었다.

대부분의 회사들은 답장을 하지도 않았으며

몇몇 회사들은 이런건 쓸수없다란 편지만 보내왔다.


세상은 그 사람이 부자거나 거지거나 천재이거나 바보이거나 그 어떤 누구에게도 호락 호락하지 않은것이다.


"인생은 고단한 것이다"   - 고단 정규재.


전화번호부에 올라온 모든 음반회사에 보냈던 데모가 거부당한 탐의 기분을 이해할수있을까?

내가 지금 가는 길은 옳은것인가? 

사람들은 왜 새로운 소리를 거부하는가?

그냥 내가 하던 엔지니어링을 계속하는게 좋지 않을까?

나도 금수저였다면 아빠 빽으로 음반회사가 쉽게 음악 취입을 할수있었을텐데.......

라고 생각을 했었을지도..

그러나 내가 아무리 훌륭한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더라도

그것을 홍보하고 알리지 못하면 그저 사라져 버릴 뿐이다.

적어도 탐은 전화번호위에 있던 모든 회사들에게 되든 안되든 데모를 뿌린 업적은 이룬것이다.


바로 그때 몇살위의 어떤 젊은 형뻘되는 사람에게서 연락을 받는다.

바로 탐의 음악을 알아본 젊은 프로듀서 존 보일런이다.

LA 와서 같이 음악을 만들어보자는 듣보잡 존의 제안을 탐은 비관적으로 생각했다고 한다.

야 나는 오하이오 살고 직장도 여긴데  

거기까지 가서 이게 정말 내 천직이 될지 아닐지도 모를 불확실한 배팅을 

내가 왜해야 하는가 고민을 했다고 한다.


그러나 항상 너희들의 노력이 진실되고 충실하다면 

누군가 그 진가를 알아보는 사람이 반드시 나오는 법이다.

존 보일러는 포기하지 않고 탐을 설득한다.

야 너는 이 훌륭한 사운드를 너네집 지하실에서 혼자 만들었는데, 

이걸 제대로 된 스튜디오에서 만든다면

값진 결과물을 함께 만들수있을것이다 꼭 LA로 와라라고 부탁을 한다.


그래서 만난 두사람이 만든 음악이.... 

바로 니들이 듣고 있는 그룹 보스턴의  More than a feeling이다.




4. 나는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을 계속 한다.

음악은 대 히트를 하고 탐은 그렇게 얻은 돈으로 보다 새로운 소리를 만들기 도전을 계속하게 된다.

그렇게 만들어진 회사가 바로 락맨 사운드이다.



탐이 만든 락맨의 사운드는 기이하고 우주적이라서 

당시 많은 그룹들에게 사랑을 받고

보스턴만의 소리가 널리 퍼지게 된다.

이후 탐은 음악보다 새로운 소리를 만드는 일에 집중했다.

그의 아들 제레미도 아버지의 뒤를 따라 MIT에서 공부를 하며

자기만의 소리를 만드는 독특한 기타 패달등을 개발하고 있다.

물질적 부는 영원히 상속되는게 아니다.

그러나 너희들이 가지는 꿈과 정신은 계속 남아서 대를 이어갈수있는거다.





기회균등 없는 사회

부익부 빈익빈

가난한 직업으로는  죽었다 깨어나도 위로 올라갈수가 없어


니들이 주변 선배들이나 친구들에게

매일 듣는 말들이고 어쩌면 스스로 작은 알바를 해보며

직접 겪는 일일수도 있다.


불평등과 불공평은 우리가 사는 사회의 근본이며

자본주의는 이 모순을 스스로 고칠수없다.

그래서 어쩌라고?

없는자에게는 있는자의 것을 강제로 때서라도

그들이 성공할수있는 기회의 균등을 국가는 제공하고

누구나 바닥부터 부자가 될수있는 공평한 사회를 만들자라는것이

너희가 사는 사회가 보편적으로 말하는 정의다.



그러나 기회의 균등은 이미 모든이에게 벌어지는 일이다.

기회는 언제든지 하늘의 별처럼 누구에게나 날라오는것이지만, 

그것을 알아보고 잡는것은 바로 나 자신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부의 많고 적음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이 자신의 삶은 바라보는 "시각"의 문제이기 때문에,

눈을 들어 하늘을 보지 않는 이상

나에게 기회의 별이란 아무런 의미가 없는것이다.


사람은 "기회"를 보는 눈이 있어야 성공 할수있다.

이 법칙은 내가 가난하거나 부자거나

무식하거나 학식이 있다고 달라지거나 더 좋아지는것이 아니다.

내 앞에 놓여진 현실에서 "가능성"을 찾아내고 "잠재력"을 뽑아낼수있는것은

순전히 인간 스스로가 가지는 "시각"의 문제이다.

시각은 남이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오직 이세상에서

나만이 고칠수있고 바꿀수있는것이다.


누구든 

성공을 꿈꾼다면 희망이 없는 것으로 부터

잠재성을 찾아내고 기회를 찾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그리고 무엇이 나에게 "기회" 인가를 알아보자.





데이브 토마스


이미 2002년 69세의 나이로 작고하신 데이브 토마스 이야기는 

한국에 많이 소개되지 않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그가 누군지도 모르며

들어본적도 없다. 



1. 이보다 더 불행할수가 없다.

데이브는 1932년 지금은 도박의 도시로 유명한 

뉴저지 아틀란틱 시티에서 

이름도 모르는 미혼모에게서 태어난다.

아름다운 해변가의 도시였던 아틀란틱 시티는 

그때나 지금이나 향락과 오락의 도시로

향락과 섹스로 가득한 가운데 내가 어떻게 왜 태어났는지 알지도 못하고 

데이브는 세상에 나오자 마자 즉시 입양센터에서 자라게 된다.



태어난지 6주 밖에 안되는 데이브는 어느 커플에게 입양이 되나

5살이 되는 때 엄마는 죽고 

아빠는 실직을 하여 직장을 찾아 헤매여야만 했다.

어린 데이브는 할머니 손에 맡겨져 미시건에서 자라야만 했고 

학교라는 곳을 제대로 다니지 못하며 이곳 저곳을 방황하며 살며 고픈 배를 채우며 살다가

12살이 되던때 테네시에서 겨우 식당에서 일하는 작은 잡을 하나 얻게 된다.


그러나 어느날 데이브는 직장 상사와 음식을 만드는 상도적 문제를 가지고 논쟁을 하게 되고

어린 데이브는 직장에서 짤리게 된다.

이 사건은 데이브에게는 생계적으로 절망적인 경험이었고

이날 이후 데이브는 무슨일이 있어도 직장에서만은 짤리지 않겠다고 결심한다.


(이 식당은 이후에 가게안에 데이브의 사진을 크게 걸며 홍보팔이짓을 하다가 2010년에 망하고 만다.)





2. 하나에 집중하자 그것이 무엇이건 간에

15살이 되던해 이곳 저곳에서 직장을 찾던 아빠를 따라 인디아나로 이주한 데이브는

어린 나이에 어려운 결정을 내리게된다.

더이상 아빠를 따라 방황하지 못하겠다며 또 다시 다른 도시로 직장을 찾아 떠나는 아버지를 보내며

자신은 인디아나에 하비홈이란 한 작은식당에 취직을 하여 정착을 한것이다.


다니던 학교도 집어치우고 데이브는 이때부터 온전히 식당일만을 위해 온힘을 다하기 시작한다.

첫 직장을 잃었던 데이브는 

다시 직장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내가 하는 일에 자부심을 가지고 

최고의 전문가가 되기 위하여  집중해야 한다고 믿었던 것이다.



데이브는 군에 주방부서에 지원입대를 하면

요리공부를 나라에서 무료로 시켜준다란 사실을 알고 군대에 자원입대하여

전문 요리 공부를 배우고 주독일 주둔군 식당 취사병이 되어 경험을 쌓고

18살이 되던해 제대를 한뒤에 자신을 거두어 줬던 하비홈 식당으로 되돌아 온다.

하비홈 식당의 사장은 보통 식당주방일을 적은보수의 잡일로 하찮게 여기고 

뜨내기들의 거쳐가는 장소마냥 계속 바뀌던 자리를

성실하고 진실되게 일하던 데이브에게 큰 신뢰를 주게 된다.




3. 기회가 드디어 나에게 왔다.

그렇게 열심히 일하던 식당에 어느날 흰 머리를 휘날리던 할아버지 한명이 찾아온다.

이 할아버지는 자동차에 자신이 만든 닭고기 비법을 넣고 다니며 

사람들에게 자기 요리비법을 사라고 홍보를 하고 다니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고집이 너무 쌨고 자신에게 조금이라도 불리한 조건이라고 하면 

거래는 없던일로 합시다 박차고 일어나기 일수여서 

그때까지도 할아버지 요리에 관심을 가지던 사람은 없었다.

그날도 예외는 아니여서 하비홈 식당 주인에게 지팡이를 휘두르며

고집스러운 자기 만족심과 오만으로 

자기 닭고기 요리의 자랑만을 늘어놓고 있었다.

하비홈 식당의 주인은 이런 고집불통 영감탱이의 자랑이 듣기 싫었고

할아버지에게 당장 식당을 떠날것을 요구했다.


이때다.

바로 이때다.

식당 주방에서 이 광경을 지켜보던 18살 데이브가 뛰어 나왔다.


잠깐!


사장님 일단 먹어보고 결정하죠.

식당은 음식의 맛이 우선입니다.

저 할아버지가 저렇게 자신있다란 말은 

그 맛에 자신이 있기 때문일수도 있습니다.

먹어보지 않고 그냥 보내지 마세요 사장을 설득한다.

음식에 진솔한 데이브를 믿었던 사장은 마지못해 승락을 하고

할아버지 닭고기 요리의 맛을 본 데이브는 이 제품을 식당의 메인으로 끌어올릴것을 부탁하게 된다.


이렇게 시작된 만남때문에 고집불통 할아버지는 

자신을 알아준 손자뻘 젊은 아이에게 호감을 가지고

그렇게 고집을 부렸으면서도

데이브가 설득을 하면 언제 그랬냐는듯이 

데이브의 의견을 따르기 시작했다.

이렇게 시작된 것이 바로 우리가 잘 아는 

켄터키 프라이드 치킨의 시작인것이다.






4. 나는 내가 잘하는 일을 계속 한다.

오랫동안 할아버지와 일을 하던 데이브는 자신만의 일을 시작하고 싶어했다.

어린 시절 부터 배워왔던 음식에 대한 철학을 담은

그런 비즈니스를 시작하고 싶었다.

음식은 오직 그 음식의 퀄리티로만 인정 받을수있으며,

그 음식을 대접하는 자의 정성으로 고객이 다시 찾게 만들수있다란 것이었다.

데이브는 이러한 철학을 담은 비즈니스를 시작하는데, 

바로 그것이 웬디스 햄버거 이다.



웬디스 햄버거는 창업자의 정신에 어울리게,

지금도 웬디스는 분명히 패스트푸드 식당임에도 불구하고

냉동재료를 쓰지 않는다.

고기도 냉장보관된 고기를 손님이 주문하면 즉시 구워서 대접한다.

또한 패스트푸드 식당으로는 드물게,

햄버거안에 어떠한 토핑을 넣고 빼고 양에 상관없이 따로 추가비용을 받지 않는다.


어린 시절 부터 배워왔던 남을 대접하는 철학을 

몸소 자신의 비즈니스에 실천하고 있는것이다.


미국이라고 주방에서 일하는 일이 아름다운것은 절대 아니다.


영화에서도 많이 보겠지만,

미국에서도 주방일은 허드래 일이며 

누구도 하고 싶어하지 않는 허접한 직장이였다.

그러나 데이브에게는 음식을 만드는 일은

철학이며 동시에 신뢰였다.





5. 다시 되돌려준다.

데이브 일생일대의 후회란 어린시절 공부를 하지 못했던 기억이다.

데이브 스스로가 이후에 검정고시를 패스하고

자신과 같이 입양된 아이들이 마음껏 공부하고 자랄수있는 환경을 지원하는 재단을 만든다.

이것이 한국에서도 유명한 데이브 토마스 입양 재단이다.

현재 매년 10만명 이상의 아이들을 입양하고 보살피며 교육을 하고 있다.



세줄요약


1. 가난은 죄가 아니다. 불행은 상대적이며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2. 문제는 그것을 바라보는 시각이며 그 시각에 따라 문제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3. 기회는 그렇게 언제나 우리주변에 있지만, 그것을 잡는것은 나의 의지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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