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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4년, 세계의 TV시장에서 한국의 삼성전자와 LG전자는 40%에 육박하는 점유율을 기록하며 세계시장에서의
우위를 확고히 굳혔다. 일본 기업들은 텔레비전이나 PC처럼 채산성이 맞지 않아서 영업이익을 까먹는 분야들을
축소하는 경영합리화에 한창이고, 또 중국 기업들은 경계의 대상인 것은 맞지만 아직은 멀었다. 따라서 한국의
TV산업은 당분간 여유가 있으리라 예상하고 있다. 그동안 치열하게 분투해온 한국 기업인들의 노고를 평가하는
의미에서 박수를 보낸다. 그러나 오늘 본인이 논평하고자 하는 것은, 이처럼 TV나 PC, 스마트폰같은 분야에서
경쟁력을 잃은 일본 제조업체들의 자구책 마련, 또 경영합리화를 통해서 건실한 기업으로 탈바꿈하고자 하는
과정들이다. 나는 일본 제조업이 세계적으로도 가장 강한 수준에 도달해있다는 사실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
일본을 방문할 때마다, 때때로 일본 제품을 사용할 때마다 모노즈쿠리가 일본 경제를 지탱하고 있음을 느낀다.
대규모 양적완화를 통한 엔저(円低)로 대변되는 아베노믹스의 성패에 대해서 속단하기에는 아직 이른 감이 있다.
편의상 엔저라고 이야기하지만, 냉정하게 평가하자면 현재 달러당 115~120엔에서 등락을 반복하고 있는 엔화의
가치는 여전히 엔저라고 불리우기에는 부족한 감이 있다. 이유인즉슨, 1985년 플라자 합의 이후 엔화의 가치는
125엔이 기준점이였기 때문이다. 1995년, 역플라자합의는 엔화 가치를 140엔까지 떨어뜨리며 한국의 경상수지
적자를 눈덩이처럼 불려놓았고, 외환보유고를 거덜내버렸다. 이것이 진정한 의미의 엔저이다. 또 엔화는 안전하다.
그렇기에 미국 경제가 불안해지면 헤지펀드들은 달러를 매도하고, 엔화를 매수한다. 이와 같은 공식은 2008년에
발생한 세계금융위기에서도 여실히 증명된 바 있다. 전세계의 투자자들이 엔화를 대거 매수했기에 엔화의 가치는
수직으로 솟구쳐올라갔고 달러당 75엔이라는 살인적 엔고(円高)를 촉발시켰다. 일본기업들의 비명이 터져나왔다.
물론 일본 경제는 GDP의 60% 이상이 내수 소비인만큼 내수시장이 견고하고, 또 에도시대부터 꾸준하게 국부를
축적해온 국가인 만큼 경제의 두께도 두꺼워서 이런 정신나간 엔고에도 무역흑자를 기록하는 괴력을 발휘하였다.
그러나 15 대 1까지 벌어진 원/엔 간의 환율격차가 이어지는 동안에 일본 전자기업들은 궤멸되다시피 해버렸고
이 호기를 놓치지 않고 삼성전자는 약진할 수 있었다. 이어 도호쿠 대지진이라는 재앙이 급습하고 한국 대통령의
덴노 사과 발언, 중국 시위대의 센카쿠 열도 상륙, 그리고 일본 기업에 대한 테러 등은 일본인들의 자존심에 많은
상처를 입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쓰러지지 않았다. 대지진의 피해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리더십의 부재가
노출되었음에도 그들은 폭동을 일으키지 않았다. 새로운 리더십이 형성될 때까지 기다릴 수 있는 안정감이 있고,
사회적 핵심가치인 완전 고용을 유지하여 사회 불안없이도 위기를 극복해낼 수 있는 국가임을 재확인시켜주었다.
현재 일본 정부를 이끌고있는 아베 신조 총리는 이미 한 차례 총리직을 수행한 적이 있고, 집권 여당의 원내총무와
간사장 대리, 총재, 내각의 관방장관까지 역임한 인재이다. 세이케이 대학교와 서던켈리포니아 대학교에서 정치학을
전공한 수재이기도 하다. 건강상의 이유로 총리직에서 조기사퇴해야 했던 과거와 달리 작금의 아베 신조는 육체도
단단하고 정신적으로도 견고하여 일본을 위해서 싸워나가는 투사(鬪士) 이미지로 일본 국민들에게 어필하고 있다.
그러니 한국의 반발에 물러설 기미가 보이지않는다. 한국 측에서 정상회담의 전제조건으로 내세우는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도「나는 일본을 대표하는 국가정상이고, 일본의 자긍심이기도 하다. 따라서 조건을 앞세우는 정상회담에는
응하지 않는다. '나를 만나고 싶거든 이건 이렇게 하고, 저건 저렇게 해라' 라는 요구에 대해서 '예, 그러지요.'라고
하면서 만난다는 것은 스스로를 약자시하는 것이다. 정상회담은 대등하게 진행되어야 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렇게 자신감이 충만한 아베 신조는 지금껏 고전해온 일본 경제를 반석 위에 올려놓을 것임을 몇 차례나 공언했다.
일본 기업들은「선택과 집중」이라는 구호 아래 대대적인 구조조정에 착수했고, 가시적인 성과도 거두고 있다. 물론
엔화약세도 도움이 되었겠으나 보다 근본적인 원동력은 기존의 주력사업을 매각해가면서까지 주력해온 구조조정에
있다. 일본 기업들은 엔화약세에도 불구하고 수출단가를 내리지 않았다. 오히려 히타치처럼 기존의 TV나 반도체와
같은 한계사업들을 매각하고 IT시스템, 빌딩시스템, 발전, 엘리베이터와 같은 새로운 성장사업을 육성하여 안정적인
수익구조를 확보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 미쓰비시 전기(電機)는 공장자동화 기기, 파나소닉은 리튬이온전지와
같은 자동차用 부품과 주택 발전, 도시바는 에너지와 스토리지&반도체, 헬스케어, 또 소니는 이미지 센서에 재원을
투입할 방침이다. 일본의 조선업 역시 대대적인 통폐합에 돌입하여 일본 조선업계는 현재의 5社 체제로 전환되었다.
자동차 산업은 여전히 경쟁력이 견고하여 북미시장의 경기회복, 수요증가에 따라 사상 최대의 실적을 거두고 있으나
일본의 저력은 소비재보다도 기계류와 자본재에 있다. 산업용 로봇에서 세계 1위에 랭킹되어있는 야스카와 전기부터
탄소섬유와 같은 첨단의 핵심소재에 있어서 세계 1위인 도레이, 중소형 LCD 패널의 재팬디스플레이, 최근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있는 아이폰6 플러스에 탑재된 광학식 흔들림 보정용 액추에이터는 일본 알프스 전기와 미쓰미 전기에서
공급하고 있고, LTE 송수신 회로에 사용될 고주파 부품은 무라타제작소에서 담당하고 있다. LED에서의 니치아화학과
표면처리의 이비덴, 에에버스에 티타늄시트를 공급하고 있는 스미토모금속, 뉴욕 지하철 차량 가운데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가와사키 중공업 등등, 산업의 무게중심이 B2C에서 B2B로 이동하고 있다. 이런 것을 우리는
고부가가치 산업이라고 일컫는다. 오직 기술력으로 안정적인 수익구조를 갖출 수 있다는 점에서 메리트가 상당하다.
흔들리던 일본 제조업을 정비하고 경쟁력을 강화하는 것은 아베노믹스의 장기적인 목표달성을 위한 시금석이
될 것이다. 일본 기업들의 실적이 안정적인 성장 궤도에 안착하고, 이를 통해서 신규고용이 증가하고 임금이
상승함으로써 내수 소비가 활기를 띤다면, 그제서야 아베노믹스는 선순환의 고리를 구축했다고 평가받을 수
있다. 이를 위해서 일본 기업들은 안정적인 수익창출원을 확보하고자 꾸준하게 투자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일본의 비즈니스맨들과 교류하면서 느끼는 점이지만, 그들은 조급하게 진입하거나 조급하게 철수하지 않는다.
단기적인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아닌, 장기적인 관점과 인내력을 갖고 여유있게 기다리는 법을 알기 때문이다.
탄소섬유만 하더라도 일본 도레이와 함께 구미(歐美)기업들도 진출했으나, 그들은 2~3년 만에 철수해버렸다.
반면 도레이는 끈덕지게 투자하여 탄소섬유 개발에 성공하였다. 그걸 지켜보더니 뒤늦게 다시 뛰어들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단순히 부품을 구입해서 조립하는 완제품 분야가 아닌 고부가가치의 핵심부품이나 첨단 소재는
일본을 따라잡을 국가가 없을 것이라고 평가한다. 예컨데 첨단소재는 40년 이상, 섬유는 80년에 달하는 장구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부품을 사서 조립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자본재에는 장기적인 관점과 인내력이 필요하다.
성공확률이나 시간, 리턴에 일희일비한다면 결코 양질의 소재나 부품은 나오지 않는다. 최첨단의 IT제품들을
분해해보면 오직 일본 기업만이 생산할 수 있는 핵심부품들이 많다. 그리고 로봇 산업의 경우에는 미국과 함께
세계를 주도하고 있어서 전세계의 생산공장에서 가동되는 산업용 로봇의 60%가 일본 브랜드일 정도로 시장을
장악하고 있고, 가스터빈같은 경우에도 제너럴 일렉트릭, 지멘스와 함께 미쓰비시가 세계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당장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일본이 미래에도 세계 제조업을 주도해나가리라는 전망에는 그 이유가 있는 것이다.
요약
1. 일본 제조업은 기계류나 자본재에서 실력을 발휘하며 실적을 밀어올리고 있다.
2. 더불어 일본 제조업의 무게중심이 B2C보다는 B2B로 이동하고 있는 것 같다.
3. 방대한 원천기술력과 경영 철학에 힘입어 일본 제조업은 쇠퇴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