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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비열한 기술 전쟁 1부

과정 2017. 6. 17. 13:27

1. 에디슨의 탄생


1847년 2월 11일 오하이오 주의 밀란에 있는 작은 마을


낸시 에디슨이 일곱 번째 아이 토머스 앨바 에디슨을 출산한다.


당시 양초와 가스등으로 불을 밝히는 세상에서 태어난 이 아이는

죽기 전에 전깃불로 어둠을 밝히는 세상으로 완전히 탈바꿈하게 된다.




낸시 에디슨은 토머스 앨바를 낳을 때 이미 중년의 나이

(30 넘어도 퇴물인데 중년의 나이면 다운증후군 낳을 확률 up, 상장폐지녀)


처음 태어났을 때 머가리가 너무 커서 마을 의사가 

아이가 고열에 시달리지 않을까 걱정했다라는 카더라썰이 있다.


시대의 천재 아인슈타인도 태어날때 머가리 컸다고 들었는데 천재들 종특인가 봄




이런 애디슨 집안의 고칠수 없는 유전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고집


빼애애애애애애애애애애애액!!!!!!!!!


집안 자체가 고집때문에 독립전쟁이 발발했을 때 영국여왕 지지했다가 가족 전체 캐나다로 out


그후 정신 못차리고 줄 잘못서서 캐나다 연방정부로부터 out


그 후 오하이오로 이주




12살 때 미시간 주의 포트 휴런과 디트로이트를 연결하는 

그랜드 트렁크 철도회사(Grand Trunk Railway)의 통근열차 안에서

신문과 먹을거리를 파는 일로 첫 직장생활을 시작


이렇게 번 돈 가운데 1달러를 한 주마다 어머니께 드리고, 

나머지는 책과 실험 장비를 구입하는 데 사용한다.




"내 인생을 통틀어 가장 행복했던 시절은 열두 살 때였다. 

열두살이면 좋은 시간을 갖기에는 충분히 자란 나이지만

골치 아픈 문제를 이해하기에는 너무 어린 나이이기 때문이다."


에디슨은 자서전에 12살 때를 이렇게 회고한다.


열세 살이 되기 직전에 에디슨은 귀에 심각한 부상을 입는다.


사고원인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설이 존재


1. 에디슨이 플랫폼에 서 있다가 들어오는 기차에 귀를 치였다는 소문 (머가리 안맞은게 다행 ㄷㄷ)

2.화물칸에서 실험을 하다가 불을 내는 바람에 화가난 차장이 에디슨에게 풀스윙 싸다구를 날렸는데 잘못해서 고막 다침


이유가 무엇이건 간에 에디슨은 고막을 다치던 순간 귀에 날카로운 굉음을 들었다고 한다.


에디슨의 청력은 그 뒤로 점점 더 나빠져서 결국 생의 대부분을 거의 일베 정회원급 귀머거리로 살게 됨




1868년 보스턴에서 전신 기술자로 취직한 에디슨


이곳에서 패러데이의 업적에 영감을 받아 전문 발명가가 되기로 결심한다.

서점에 진열된 패러데이의 서적을 싹쓸이할 정도로 그의 업적에 완전히 매료되고

유명한 영국인이 발명했다는 전기기구에도 관심이 많았지만 무엇보다도

패러데이의 물리적 세계관에 많은 영감을 받았다.




2. 가스회사와의 전쟁


1878년부터 에디슨은 가스조명 시장의 공급 구조를 분석하기 시작


그리고 나의 주 경쟁자는 소수의 아크등 생산업자가 아니라 

당시 조명 시장을 장악하고 있던 가스 회사다 !!!


가스회사와 경쟁하려면 천연가스를 작은 단위로 나눠서 가정에 공급하듯이

여러 개의 조명을 동시에 밝힐 수 있도록 직류를 분할하는 기술이 필요하다 !!!


가스공학학회에서 발간한 책자들, 과거에 발행된 가스 관련 잡지 등 

가스와 관련된 자료를 있는대로 다 모으기 시작한다.


모든 자료를 분석



Calculating. . . . .



OK . . . !


It's Possible


'전류는 성공적으로 분할될 수 있으며 상업적인 가치도 충분히 있다'

결론에 이르게 된다.


에디슨의 실험 노트에는 

"일반 조명으로서 전기와 가스의 격돌"

이라는 문구가 사방에 적혀 있다.


그 가운데 한 노트에는 원대한 목표를 향해 첫발을 내딛는 결의에 찬 문구가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목적 : 가스조명을 전기조명으로 대치함. 이를 위해서는 먼저 가스조명 시스템을 전기로 똑같이 흉내내는

실험이 선행되어야 함. 자연적 조건과 인공적 조건 그리고 상업성에서 모든 요구사항이 충족되어야 함. "




하지만 안정적인 백열전구를 설계하는데 10분만에 필라멘트가 끊기는 조루전구

개선하기에는 자금이 부족하다!!!!


이런 조루전구를 들고 신문사에 찾아가 인터뷰에

"가스조명을 대신할 만한 값싸고 실용적인 전기조명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라 말한다.


특히 -뉴욕 선-의 기자는 백금 필라멘트 전구가 밝게 빛나는 모습을 보고 감동해

"차갑고 아름다운 불빛이 새롭게 등장했다.가느다란 백금 줄이 버너처럼 

타올랐지만자신은 결코 타지 않았다. 그것은 마치 밤하늘의 

견우성처럼 눈부신 백열광을 발하면서만물을 비추고 있었다..."

기사를 낸다.




인터뷰 기사가 나가자마자 월스트리트의 재력가들이 앞다퉈 에디슨을 찾기 시작한다.

전구 시위를 통해 당시 미국 최고의 갑부였던 밴더빌트와 모건,

그리고 한때 에디슨의 고용주였던 웨스턴 유니언의 이사들이 공동출자하여 자본금 30만 달러의


'에디슨 전기회사(Edison Electric Company)'


설립


멘로파크의 실험실에서 전구를 개발한다는 조건으로 고액의 연봉을 받게 된다.

앞으로 5년 동안 조명과 관련된 모든 발명품의 소유권을 회사에 양도하기로 합의




"몇 주 안에 안정적인 전구를 개발할 자신이 있다"고 큰소리 쳤지만

그 뒤로 두달이 지나도록 시제품이 완성되지 않았고

에디슨은 신문에 공개할 만한 결과가 하나도 없었다.


뉴욕 헤럴드의 기자가 전구 개발의 진척 상황을 묻자

"원리적인 부분은 거의 완성되었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비용을 절감하는 문제인데 

가스등보다 싸게 먹힌다는 것만은 Real Fact입니다."




경쟁상대였던 가스 회사 측

"전구란 에디슨의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는 물건입니다.

이거 다~ 거짓말인거 아시죠?"


에디슨이 전구 홍보를 시작한 이후로가스회사의 주가는 10퍼센트 이상 폭락한 상황


가스 회사 간부들 왈

"원리적으로 전구는 가스등보다 저렴할 수 없다. 

에디슨이 주가를 주작하기 위해 거짓 소문 퍼뜨린거!!

전구 자체도 문제지만 전기를 공급하는 방법도 불투명하다.

에디슨은 전류를 '나눈다'고 말하는데일부 과학자는 

직류를 여러 가정집에 분배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당께"




에디슨 : 이 문제와 관련해 지금까지 발표된 의견은 

백열전구 제작이 불가능하다는 쪽으로 쏠려 있는데

이것은 결코 공정한 의견이 아니며 과학적인 근거도 빈약하다.


과거의 사례를 떠올려보라!!!!

증기선이나 잠수함의 전기통신, 이중전신 등은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주장했지만 결국 현실로

구현되지 않았는가. 부정적인 면만 집중적으로 부각시킨다면 이 세상에 가능해 보이는 일은 하나도 없다.



점점 경쟁은 과열되고 치열해지는 상황


당시 에디슨의 목적은 전구 하나만을 개발하는 것이 아니라 직류전기를 

생산하고 공급하는 시스템 및 그와 관련된 상업 구조를 전체적으로 설계하는 것




이후 투자자들을 상대로한 백금 필라멘트 전구에 대한 설명회를 비밀리에 개최


대부분의 전구가 몇 초 만에 빛을 발하지도 못한 채 터져버림

현실을 목격한 투자자들은 에디슨에게 강한 불만을 나타냈다.

그들 중에 전재산 몰빵한 새끼들도 있었음




애디슨은 실험실로 돌아와 가장 기본적인 원리부터 다시 생각한다.

전구의 불빛이 안정적인 상태를 유지하려면 '균일한' 직류 전류를 보내야한다!!


무수한 시행착오를 겪은후 

직류전기를 110볼트로 공급하는 것이 가장 적절하다!!!!


지금도 미국, 캐나다, 멕시코, 일본 등에서는 가정에 110~120볼트의 전기가 공급됨




1879년 10월 21~22일


탄회된 목화실을 집중적으로 테스트한다!!!!


에디슨 실험노트


"10월 21일 코트 사의 19번 목화실을 사용한 9번 전구가 

양초의 2분의 1이 타들어가는 시간 동안 안정적으로 빛을 발하다.

배터리 18개와 동일한 기능. 확인 시간 새벽 1시 30분."


유레카 !!!!!




1879년 크리스마스 무렵

에디슨이 만들었다는 인공태양을 구경하기 위해 수백 명의 사람들이 멘로파크로 몰려든다.

인파 속에 섞여 있었던 뉴욕 트리뷴의 기자는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표현한다.


"8시가 되자 엄청난 인파가 실험실을 에워싸는 바람에 직원조차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그러다 누군가가 '저기 에디슨이 있다!'고 외치자 사람들이 일제히 한쪽으로 몰리면서 

건물의 버팀목이 무너질 뻔했다."




멘로파크에 몰려든 사람들

이 씨발 이게 뭐야 !!!


웃긴건 작동원리도 모른채 뿜어져 나오는 현란한 불빛에 넋 잃고 감상

"저렇게 뜨거운 말발굽을 손도 데지 않고 어떻게 유리구 안에 집어넣음?"

하고 묻는 새끼들 다반사였다고 한다.



15개월 동안 진행된 '전구 개발 프로젝트'는 에디슨의 위대한 승리로 막을 내린다.




3. 테슬라의 등장과 조지 웨스팅 하우스


1884년 여름의 어느 화창한 날


한 낯선 사람이 65번가 사무실을 찾아와 자신이 새로 입사한 사원이라며 에디슨에게 인사를 건넨다.

그는 별다른 특징이 없어 보였고 만남 자체도 늘 이어져온 형식적인 신고식에 불과했다.

눈은 에디슨처럼 푸른색이었으나 매일같이 사무실을 들락거리는 다른 직원들과

달리 앞날을 꿰뚫어보는 듯한 안목이 느껴졌다.




"제 이름은 니콜라 테슬라입니다. 출신은 세르비아계이고 

그동안 프랑스에 있는 컨티넨털 에디슨(Continental Edison Company) 사에서 

전기 기술자로 근무했습니다."


"에디슨과의 만남은 내 인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 가운데 하나였다. 

정규교육을 받지 않고 아무런 기득권도 없는 상황에서 그토록 위대한 업적을 남길 수 있다니, 

에디슨은 과연 비범한 인물임이 분명했다. 나는 과거 한때 문학과 예술에 파고들면서 

10여 개국의 언어를 익혔고 청춘의 대부분을 도서관에서 보냈다. 

- 중략 -

그런데 에디슨과 대면하는 순간, 그동안 내가 인생을 낭비해왔다는 자괴감에 빠져들었다." 


라며 뒷날 테슬라는 에디슨과의 첫만남을 회고함.




1856년 7월 9일에서 10일로 넘어가는 자정에

크로아티아의 스밀란이라는 조그만 마을에서 태어난 니콜라 테슬라


주기성을 갖는 교류와 밀접한 삶을 살다 간 사람답게,

그의 탄생도 하루의 주기가 끝나고 새로운 주기가 시작되는 시간에 이루어졌다.



자신만의 독특한 운명을 감지하고 있었는데, 그는 어린시절부터 이상환 환영에 자주 시달림

뒷날 테슬라는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표현


"소년 시절에 정체 모를 환영이 수시로 눈앞에 아른거리는 심각한 장애를 겪었다.

그 환영은 항상 강한 빛을 동반했는데 한번 나타나면 시야를 온통 가리면서 행동과 사고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했다.

그것은 내 생애에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희한한 사물과 풍경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러다가 어떤 단어가 들려오면

아른거리는 환영이 그에 해당하는 생생한 영상으로 변하여 눈앞에 나타났다. 

어떤 때는 내가 본 것이 실제인지 환영이었는지조차 분간하기 어려웠다.

이 증상 때문에 몸과 마음이 한시도 편한 날이 없었다."




1880년 프라하로 이주하여 그곳에 새로 건립된 전화회사의 수석 전기기사로 취직


어느 날 오후 그는 공원 근처를 산책하다가 붉은 석양에 시선이 꽂힌다.

괴테의 -파우스트-에 나오는 문구가 그의 머릿속에 떠오른다.


뜨거운 열정은 사라지고 수고로운 하루가 끝났다.

저 너머에선 또 다른 삶의 장이 분주하게 펼쳐진다.

아아, 이 세상의 어떠한 날개도

나를 땅에서 날아오르게 할 수 없구나!


곧바로 나무막대를 집어 들고 모래위에 설계도를 그리기 시작

이 도면을 기초로 1888년 5월에 획기적인 특허를 취득한다.




그것이 바로 1883년 처음 제작된 테슬라의 유도모터는 정류자 없이

교류전원으로 작동되는 최초의 모터 !!!

Kia 취한다 !!!!


하지만 신종 모터의 시제품을 제작하려면 에디슨과 마찬가지로

돈 무일푼 거지 깽깽이라 재정적 지원을 받아야한다.


파리 근처에 있는 컨티넨털 에디슨 사에 취직

이때 에디슨의 보조 연구원으로 일했던 찰스 배철러가

니콜라 테슬라의 재능을 일찌감치 알아보고 에디슨에게 적극 추천


"주변에 위대한 인물이 두사람 있다 !!! 한사람은 당신(에디슨)이고, 나머지 한 사람은 바로 이 청년이다 !!!"




But 에디슨 

 뭐지 이새끼?!

그동안 일에 미쳐 사는 사람들 많이 봐왔지만, 자네 같은 괴물은 정말 처음일세;;


어쨋든 결국 에디슨의 지원을 받지 못한채 1885년 봄

테슬라는 사표를 제출한다.


표면적으로는 5만 달러에 상당하는 상여금이 지급되지 않았다는 이유지만

근본적으로 달라도 너무 다른 둘 !! 에디슨의 사고방식에 적응하지 못하겠다 !!!


두 사람 모두 출중한 천재였지만

에디슨의 천재성은 99퍼센트가 땀

테슬라의 경우 99퍼센트가 영감




내 유도모터에 투자할 투자자를 찾아야한다...

이때 만나 새끼가 그 유명한 조지 웨스팅하우스


"웨스팅하우스를 처음 만났을 때 '잠재된 에너지가 엄청난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겉으로 나타나는 운동에너지는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 것 같았다. 강인하고 균형 잡힌 몸매에

눈은 수정처럼 투명했고 발걸음은 스프링처럼 가벼우면서 빨랐다.

그는 보기 드물게 건강하고 강인한 사람이었으며 연기로 가득 찬 공장에서도 마치 숲 속에 있는 것처럼

행복한 표정으로 심호흡을 하곤 했다."




하지만 직류전기 시장은 에디슨이 독점하고있다 !!!

직류에 맞설 수 있는 유일한 대안, 바로 교류를 공략한다 !!!


하지만 교류전기를 공급하는 기술은 아직 검증되지 않았지만

어떤 특별한 환경에서는 직류보다 성능 씹넘사벽


'골라드-깁스 교류공급 시스템' 특허 사들이고 변압기를 통해 몇 차례 개선한다




1886년에 완벽한 교류공급 시스템을 완성

매사추세츠 주의 그레이트 배링턴이라는 소도시에서 일부 상점과 사무실에 전기를 공급하기 시작한다.

비록 규모는 작았지만 이것은 '미국에서 최초로 가동된 교류변압기'로 역사에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교류시장 확장 계획에는 한가지 중요한 요소가 빠져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교류로 작동하는 모터가 있어야 했다.


하지만 시장에는 에디슨의 직류 시스템에서 작동되는 모터일뿐....

하아.....


전기도 잘알고, 회사도 잘 세우고 못하는게 없는데

모터 때문에 7% 부족해서 죄송합니다.




이때 혜성처럼 등장하는 테슬라의 유도모터

웨스팅하우스는 약간의 협상을 거친 뒤 테슬라의 특허권을 7만달러에 줍줍

모터 판매량에서 1마력당 2달러 50센트의 로열티를 추가 지불하기로 계약


계약이 체결된 뒤 테슬라는 피츠버그로 이주하여 자신의 모터를 교류전기공급 시스템을 구현하면서

약 1년 동안 웨스팅 하우스와 함께 지낸다.




위기를 느낀 에디슨

"교류 시스템은 결코 오래가지 못한다. 

사용자가 없어서 스스로 문을 닫거나 설령 사용자가 있다 하더라도

위험 요소를 제거하지 못하여 법으로 금지될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교류는 전기왕국의 제왕인 에디슨도 위협을 느낄 정도로 강하게 치고 올라옴.

펄스트리트 시절 아무런 어려움 없이 전기시장을 독점했고,

그 뒤로 이렇다 할 경쟁자 없이 탄탄대로를 달려왔지만

새로 등장한 교류는 잠깐 나타났다가 금방 사라질 경쟁상대가 결코 아니다 !!!



교류와 직류의 진검승부가 드디어 시작된다 !!!!!




3줄 요약

1. 에디슨 태어남

2. 테슬라 태어남

3. 웨스팅하우스 태어나써 직류, 교류 싸움 시작


2부에 계속.


[출처] http://www.ilbe.com/5083612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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