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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

명나라 최고의 장수 척계광

과정 2017. 10. 22. 23:51

척계광은 명나라에서 나름 
ㅅㅌㅊ 군호집안출신이었어.


군호란 세습무관집안인데 척계광의
6대조인 척상이라는 사람이 명나라를 
세운 주원장의 부장으로 30여년동안 
열심히 싸우다가 전사했었거든.

 

주원장이 그 공로를 기려 척계광 집안에게 
대대로 등주(산동반도 봉래)지역의 
지휘첨사를 세습하게 한거지.

 

 

 

 

 산동성.png

<척계광 고향>

 

 

 

 

오 금수저 물고 태어났노? 하는 
게이들도 있겠지만 척계광의 집안은 
그다지 유복하진 않았대.
서당 갈 돈이 없어서 독학으로 공부했다는
얘기도 있더라고.


 

 
암튼 척계광이 17세 되던 해 
아버지의 병환이 위중해지는 바람에
세습직인 등주위지휘첨사를 이어받았고 
1553년 25살에는 산동도지휘첨사가 됐어.
 

그리고 25살의 척계광이 맡은 
첫 임무는 '밭갈기'였지;;;

이 지역은 최전선이 아닌까닭에
그냥 둔전이랑 병사들 훈련이 
주 업무였던 거야.


혈기넘치는 청년이 만족할 만한 곳은 
아니었지만 척계광은 실망하지 않고

보다 효율적인 둔전운영을 위해 불철주야 노렸했어.

 

 

 

그렇게 2년이 지난 1555년, 
척계광의 임지가 급작스럽게 변경됐어.

 

절강성 일대의 방어를 맡아 선방하던 
유대유라는 노장이 정치적모함에 빠져 
옥에 갇히는 바람에 절강성이 왜구들의 
무법천지로 변해버리는 사태가 일어나자

당시 절강성의 총책임자였던 호종선이라는 
사람이 척계광을 천거해 절강성으로 발령을 
받게 된 거야 (띵나라 탐관오리들 ㅍㅌㅊ?)

 

 

이 위급한 지역을 막는데 뜬금없이 2년동안
밭만갈던 척계광을 발탁한 게 미스테리하지만

 


이 것이 신의 한수였음이 곧 드러나게 되지.

 

 

 

 

 

 

 


--- 첫 전투 ---

 

 

절강성에 부임한 다음해인 1556년 
척계광이 최초로 왜구와 접촉했어.


약 800여명의 왜구가 침입해 용산소라는

지역을 휘젓고 다닌다는 보고를 받은

호종헌이 척계광과 다른 장수들에게

토벌을 명한거지.


이때 명나라 토벌군은 척계광의 부대를 
포함해 총 1만4천명으로 왜구의 13배가 
넘었어ㅎㄷㄷ

 

이건 누가 봐도 명나라가 이길 수 밖에 
없는 싸움이었지.

 

 

 

 

 

 

 

 

 


근데 막상 전투가 벌어지자 
정말 어처구니 없는 일이 벌어졌어.

 
노련한 왜구들은 압도적인 전력차에도 
당황하지 않고 오히려 800밖에 안되는 
군세를 세부대로 나눠서 미처 태세도 
갖추지 못한 명나라 진영으로 일제히 
돌격한 거야.

(그동안 얼마나 우습게 보였으면;;)
 

 

세 방향에서 쳐들어오는 왜구의 급습에 
혼비백산한 토벌군은 사방으로 도망을 쳤고
 800의 왜구들은 약탈물을 고스란히 챙긴 채 
유유히 철수해버렸어.

변명의 여지가 없는 명백한 패배였지.

 

 

왜구2.jpg

 

 

뭐 어쨌든 왜구를 '쫓아낸' 건 사실이기
 때문에 호종헌은 이를 '용산소대첩'이라 
뻥치며 관군이 승리했다고 보고했지만 
실상을 두눈으로 목격한 척계광은 암에 
걸릴지경이었어;;

 

이걸 어디서부터 손대야할 지 
노무노무 막막했지

 

 

 

 

오랜 고민끝에 척계광은 무엇보다도
우선 제대로 된 '군대'를 키우는 게 
가장 시급하다고 판단했어.

 
 

용산소에서 보여줬듯 현재 절강성에 있는 
병사들은 군기도 군기지만 왜구에 대한 
공포와 패배주의가 노무 심각하게 뿌리내리고 
있었기 때문에 척계광은 차라리 새로운 부대를 
모집하는 게 낫다고 생각해 1557년 호종헌에게 
모병을 제의했지.

 

호종헌은

 

"절강성놈들이 쓸모가 있었으면 
내가 이러고 있지도 않았지.이 새끼들 존나 
패배주의 쩌는 한심한 새끼들이라 노답임ㄴㄴ"

 

이라며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지만

딱히 뾰족한 수도 없었기 때문에 척계광의 
신병모집을 허가했어. 
 
헌데 호종헌의 말마따라 새로 모집한 병사들은 
전혀 쓸모가 없다는 게 곧 증명됐지.

 

척계광은 절강성출신이라면 적어도 자기 고향을 
지키려는 의지는 있을 줄 알았지만 오히려 오랫동안 
왜구의 무시무시함을 겪어온 절강성사람들이었기에 
그 두려움과 공포가 예상보다 훨씬 깊었던거야.

 

 

 

확신을 갖고 주장했던 신병육성이 여지없이 
실패로 끝나자 척계광도 좌절에 빠지기 시작했어. 
왜구의 공포에도 굴하지 않을 투지를 가진 병사들이
절실했지만 하늘에서 떨어지지 않는 한 구할 길이 
없었으니까.

 

 

 


그러던 어느날 척계광의 눈을 번쩍 뜨게 할 
대사건이 터졌어.

 

 

 

 

 

 

 

--- 패싸움 ---

 

 

 

 

 

신병육성이 실패로 끝난 다음해인 1558년 
절강성 전역을 뒤흔든 일대사건이 일어났어.


무려 수천명이 참가한 집단 패싸움이 벌어진거야 ㅎㄷㄷ

 

 

절강성 중부지역의 작은 도시인 '의오'에서

벌어진 이 패싸움은 한 명의 주갤럼때문에 벌어졌어.

 

의오현 남쪽에 팔보산이라는 산이 있는데

1558년 이 산을 지나가던 소금상인이

팔보산의 흙이 반짝이는 걸 보고는 이 산에

어마어마한  '은광'이 있다!!고 생각한 거지.


사람은 자기가 보고싶은 것만 본다는

카이사르의 말처럼 이 소금장수는

팔보산의 '보'글자가 보물 보寶라는 게 
이 산에 은광이 있다는 걸 암시하는 증거라고

믿었고 온 재산을 끌어모아 수천명의 광부들을

동원해 채굴을 시작했어.

 

 

헌데 이 모습이 의오현 사람들을

빡치게 만들고 말았지.

 


의오현이 원래 좀 배타적이라

외지인이 머무는 것조차 꺼려했는데

지나가던 주갤럼새끼가 외지인 수천명을

데리고 오랫동안 마을의 소중한 동반자였던

팔보산을 구멍내고 다녔으니까.


결국 의오에서 대장격이었던 '진대성'이라는

사람이 의오현과 인근마을사람들까지 끌어모아

무려 3천명을 모은 다음 무기를 들고 광부들을 쳤어.

 

 

 

 패싸움.png

 

 

 

헌데 광부하면 예로부터

거친 상남자들의 직업아니겠노?


광부들의 보스인 왕여룡 역시 광부들에게

곡괭이와 각삽을 들게 했고 이렇게 벌어진

수천대 수천의 패싸움은 순식간에 전쟁으로

번져버렸어;;;

 


헌데 이게 끝이 아니었지.

 

 

 

의오현을 포함한 인근지역을 관할하던

현령 조대하가 빡치기 시작한거야.


"이 새끼들이 내 구역에서 날뛰어?"


조땅크는 낫과 곡괭이를 들고 일어난

하나의 폭도들을 제압하기 위해

관군들을 끌고 이 싸움판에 끼어들었고

사태는 수습할 수 없을 정도로 번지기 시작했지;;

 

 

마침내 패싸움은 진정이 됐고 소금장수와 광부들이

팔보산을 떠나는 것으로 끝이 났지만 이 과정에서

들판이 뼈로 넘칠정도로 엄청난 사상자가 발생했고

그야말로 절강성 전역이 떠들썩했었어.


여담이지만 나중에 알고보니 팔보산 이름도

보물 '보寶'자가 아니라 '보'가 보호하다 할 때의

보保인데 와전된 거였고 팔보산에는 은광은커녕 
구리 부스러기도 안나는 산이었대ㅋ

그리고 이 소식을 들은 소금장수는 한강으로 갔다고 해.

 

 

 

고려 민병대.jpg

<소무룩>

 

 

 


이 사건에 대해 사람들은 그저

주갤럼ㅄㅋㅋ 하며 웃어넘겼지만

척계광은 달랐어.

 


그는 이 의왕사람들이야말로 자신이 찾던

투사들이라고 확신했지.

 

 

척계광은 호종헌에게 찾아가 

 

"이놈들은 힘도 쎄고 날쌘데다가

목숨도 가볍게 여기고 풍속이 천박해서

힘밖에 모르니 잘 훈련시키면 좋은 병사가

될 수 있습니다!!"

 

라는 디스인지 칭찬인지 모를 말을 하면서

다시 모병을 건의했고 호종헌 역시 지난 번의

실패로 인한 막대한 예산손실도 개의치 않고

모병을 허가했어.

 

 

척계광은 일단 전설의 주먹들을 모조리 다 모았어.

 

땅크현령 조대하는 물론 의오대장 진대성,

광부두목 왕오령까지 섭외하는데 성공했고

곧 의오와 광부들로 신병들을 구성하기 시작했지.

 

허나 아무리 좋은 원석일지라도 다듬지 않으면

 한낱 돌멩이에 불과할 뿐이지.


어떻게 해야 이 거친 짐승들을 어엿한

한 사람의 군인으로 만들 수 있을까?

 

 

 

 주민들.jpg

 

 

 

 

 

그리고 바로 여기서부터 척계광의

진면목이 드러나기 시작했지.

 

 

  

 

 

 

 

 

 

---군율---

 

 

 

 

 

원래 삼천명만 모으려고 했지만

의오싸나이들과 광부들의 적극적인 참가로
사천명을 모으게 됐고 척계광은 그야말로

오금이 저리는 무시무시한 군율을 세웠어.

 

엄격하기로 유명한 척계광표 군율의 특징은

 '참수'가 많다는 거였지.

 

 

  

전투에 앞서 질병을 사칭하면 너 참수


전투에 앞서 무기를 버리면 너도 참수


전투시 퇴각하면 병사든 대장이든 다 참수


대장이 전사했는데 그 부대가 퇴각하면 모조리 참수


매복작전때 ㅄ같이 너무 일찍 일어나거나 늦게 일어나도 참수


조총수가 연습이나 실전시 실수로라도 먼저 쏘면 너도 참수


혹시 대장이 부하 위한답시고 보고 안하면 너도 참수

 

조총병을 보호하는 근접병이 조총수 못지키면 너도 참수


평민을 죽여 전공을 사칭하거나 부녀자를 겁탈하면 당연히 참수


전투시 겁먹고 머뭇거리면 연대장이든 대대장이든 중대장이든

안봐주고 귀 짜름 만약 귀 검사해서 안짜른 놈이 하나라도 있으면 참수


명령불복종은 당연히 참수

 

 

 

...참수보다 가벼운 형벌은 귀짜르기였는데 
행군도중에 오줌마렵다고 부대이탈해서 오줌누면 귀 절단ㅋ

 

이 외에도 시끄럽게 떠들면 묶어놓고 빳따 40대ㅋ


훈련시 시험봐서 성적이 중하인 경우에도 묶어놓고 빳따ㅋ


병사가 훈련 빡쎄다고 도망치면 그 부대 전체 묶어놓고 빳따ㅋ

 

이 밖에도 군가 외에 다른 유행가 부르는 것도 금지했고 
심지어 고향이야기하는 것도 금지했어.

 

 


"아니 ㅆㅂ 이런 미친 군율을 누가 견디겠노? 
제정신이면 다 도망가버리지!!!"
 라고

생각하겠지만 놀랍게도 이들은 도망치지 않았어.

 

 

척계광이 엄하긴 했지만 병사들 하나하나를

세세하게 살피면서 신경도 잘 써주고 무엇보다

'포상'을 기가막히게 잘 해줬거든.

 

군대 다녀온 게이들은 알겠지만 
아무리 지랄같은 선임이나 중대장이라도

챙겨줄 거 확실히 챙겨주면 왠지 잘 따르게 되지ㅎㅎ

 

 

 

거기다 척계광이 대단했던 건

포상뿐만 아니라 병사들에게

 

"황제와 대명제국을 위하여 목숨을

초개와 같이 버리며 싸우다 죽자!!"

 

라는 개소리가 아니라 정말 현실적인

설득을 했다는 거야.

 

 

 

예를 들어

 

"니들은 관군이기 때문에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하루에 삼푼씩 돈을 지급받는다.

그리고 이 돈은 백성들에게 세금으로 받아온 거다.
니들 농사지을 때 세금 내느라 빡쎘던 거 생각해봐라

 

근데 지금 니들은 일을 하든 안하든 급여도

꼬박꼬박 받는다. 그리고 훈련이 빡쎄다고 불평들하는데,

내가 니들 괴롭히려고 훈련시키냐?


니들이 이 꿀빠는 군인을 하는 이상 전투에 나가

왜구랑 싸워야되는데 이때 니들이 자기 목숨도 지키고

왜구를 죽여 공도 세우게 해주려고 훈련을 시키는거다.

 

솔직히 자기 돈으로 무술선생 불러서라도 배워야 되는 걸
공짜로 해주고 게다가 돈도 주니 얼마나 좋노!!!"

 

  


사람은 경제적인 동물이야. 
허공에 높이 뜬 이상보단 눈앞의

이익을 먼저 좇기 마련이지.


척계광은 이처럼 인간심리를 정확히

꿰뚫어 보았고 무엇이 그들에게 제대로 된

동기부여가 될 수 있는지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던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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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엄격한 군율과 공명정대한 상벌은
척계광과 그의 군대를 전설의 부대로

만들어줬지만

 

 

 

이게 다가 아니야.

 

 

 

 

척계광은 왜구들의 위력적인 무력에 대항할
혁신적인 전술도 필요하다고 판단했지.

 

 

 

 


척계광은 병사들에게 듣도 보도 못한 
황당한 무기를 건네주기 시작했어.

 

 

 

 

 

 

 

 

 

 

---황당한 무기---

 

 

 

 

그 기상천외한 무기는 바로 '당파'

'낭선'이었어.

 

 

당파는 우리말로 삼지창이야ㅋ
이제야 등장하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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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지창은 살상력이 노무노무 떨어지는 무기지. 
삼지창으로 윽엑윽엑 하며 들이대봤자

상대방이 그냥 적당히 창이나 칼만 앞으로 
내밀어도 가지에 걸어 막을 수가 있으니까.


때문에 종교의식용이라면 모를까 실전에선

아무도 쓰지 않았는데 척계광이 왜구를

무찌른답시고 이 걸 나눠준거야;

 

 

어처구니 없기는 방패도 마찬가지였어.

방패랍시고 나눠준 걸 보니 그냥 나무줄기를

둥그렇게 엮은 거였어;; ㅆㅂ 장난치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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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이건 아무것도 아니었음ㅋ

마지막으로 나눠준 무기를 받은 병사들은

그야말로 멘붕에 빠져버렸지.

 

 

 

병사들을 집단 멘붕에 빠뜨린 무기는

낭선이란 건데 이 건 그냥 가지가

줄줄이 달린 기다란 대나무야.


대나무로 죽창을 만든 것도 아니고

그냥 가지를 치지도 않은 기다란

대나무를 쥐어준거야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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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사들은 아 ㅆㅂ 좆됐다하며 정신이 번쩍들었지.

 

근데 진짜 황당했던건 이 무기들의 활약이었어.


정말로 이 대나무가지랑 삼지창, 나무방패만으로 
귀신보다 무섭다던 왜구들을 무찌르기 시작한 거야.

 

 

 


 

 

 

 

 

 

---원앙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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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계광은 무기를 나누어 주고 병사들을

열두명씩 모아 한 팀으로 만들었어.

 

이 열두명은 대장 한 명에

화병(취사병,전투참가는 안함) 한 명,

순수 전투원 열명인데

 

우선 맨 앞줄엔 방패2명을 배치하고

그 바로 뒤엔 대장을 세워 전방에서

 대원들을 진두지휘하게 했어. 그리고

그 양쪽엔 기다란 대나무를 든 낭선병

두명을 세우고 이어서 12척 길이의

장창병 네명. 그리고 마지막에 삼지창

두명을 배치했지.


이게 바로 그 유명한 척계광의 원앙진이야.


이 원앙진은 한마디로 팀워크전술이야.

11 : 1로 왜구를 다구리놓는다는 거지ㅋ

 

 

 

 

일단 왜구와 충돌이 발생하면

방패와 낭선이 일본군을 1차로 저지하는데 
이 때 낭선이 위력을 발휘해. 

 

 

기다란 대나무와 거기에 주렁주렁 달린

가지들로 앞에서 계속 노짱 응딩이마냥

흔들어대면 이게 거슬려서 상대방이

주춤할 수 밖에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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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이 이 대나무가지들을 뚫고 들어와

일격을 내리칠 때는 이 번엔 나무방패가 효력을 
발휘했어. 사실 이 나무방패는 등나무로 만든 건데

등나무줄기를 둥글게 감아 골조를 만들고

팽이에 선 감듯이 원뿔형으로 감아 만들었는데

질긴 등나무줄기를 여러겹으로 두껍게 말아놓은 거라

일본도의 내리침에도 방패가 깨지지않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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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도의 일격을 이렇게

막아낸 다음은 반격의 시간이었어.


2열에 선 장창병 네명이

연달아 일본군을 찔러대는 거야.
그리고 이 때 바로 삼지창이 나서서

일본군이 창병들을 내리치려는 순간 
삼지창의 가지를 들이대며 내려치기

공격을 막아내는 거지.
삼지창도 창은 창이니 위협이 될 수도 있었고.

 

 

 

 

 척가군.jpg

 

 

  

  

원앙진은 이처럼 10명의 병사들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여 한놈씩

조준사격하는 전술이었기 때문에

단 한명이라도 제 역할을 못하면 안됐어.


고작 한 두명의 패닉만으로도

순식간에 전체가 무너져버리는 걸 
목격했던 척계광이었기에 이를

방지하고자 군율을 엄격하게 세웠던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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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계광의 세심함은 이 뿐만이 아니야.

 

 

 

 

전 편에서 기술했듯 왜구들의 주된 전술 중

하나가 도망갈 때 재물들을 사방에 뿌려 
토벌군 병사들을 현혹시키는 거였어.

 

 

 

척계광은 이를 방지하기 위해

이런 상황이 발생할 경우 흩뿌려져 있는

재물들을 수거할 병사를 따로 남겨두고

전투가 끝난 후 모두 똑같이 나눠가지도록 했지.

 

이는 왜구의 수급을 가질 때도 마찬가지였어.
옛부터 전쟁터에서 병사들이 세운 공은

병사들이 가져온 적군의 목 갯수로

평가했기 때문에 병사들은 목 줍기(?)에

정신이 팔리기 일쑤였어.


심지어는 공을 세웠다고 거짓말하기 위해

애꿎은 민간인의 목을 베기도 했지
(임진왜란때도 백성들 목을 잘라다가

왜군목이라고 속여서 상받은 놈이 있었음)

 

척계광은 이 경우에도 단도수를 따로 남겨

뒤에 남은 왜구들의 목을 모으게 했고
작전이 끝난 뒤 돈을 모두 나눠가지게 해

혹시라도 전열이 흐트러지는 걸 방지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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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팀 당 한 명의 '취사병'을 둔 것에

대해 의아해하는 게이들이 많을거야.


전투에 참가하지도 않는 취사병을 굳이

팀에 하나씩 배치한 이유가 뭘까?

 

지금도 그렇지만 병사들의 식사확보는

모든 장군들의 해결할 수 없는 고통이자

고민이었어.


꼭 전투를 치르지 않더라도

작전지역으로의 행군이나 진형설치,

전장에 있다는 긴장감등으로 병사들은

쉽게 지쳤고 식사는 심리적으로도

큰 위안이되지.
(나폴레옹도 병사들의 식사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민하다 포상금까지 걸었고

그 결과 발명된 게 '통조림'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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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편에서 기술했듯 왜구는 보통

십단위의 작은 무리 여럿이

동시다발적으로 휩쓸고다니며

약탈을 했기 때문에 토벌군도

여러부대로 나뉘어야했어.

 


게다가 왜구들은 암걸릴 정도로

재빨랐기 때문에 몇날 며칠을 노숙하며

왜구들을 뒤쫓아야 하는 상황에서

병사들의 식사는 언제나 중요한 문제였지.

 


그리고 왜구들은 기습에도 능했기 때문에

식사준비하느라 땔감이나 장작 구하러 갔다가

습격당해 죽는 병사들도 많아 척계광은 아예

한 팀당 한 명씩 취사병을 지정한 거야.

 

이들은 전투에 참가하지 않는대신

자기 팀의 식사를 목숨걸고 책임져야했지.

 
 


이처럼 척계광은 새로운 유형의 적에 맞서 
전무후무한 부대를 탄생시켰어.

 


철저히 실용적인 편제에 인간심리를 꿰뚫는

통찰에 기반한 엄격하면서도 합리적인 군율까지

갖춘 이 부대를 훗날 사람들은 '척가군'이라 불렀지.

 

 

 

 

 

 

 

---- 토벌 ----

 

 

 

 

척계광이 선보인 혁신의 위력은 곧바로 나타났어.

 

척계광이 거친싸나이들을 모아 척가군을 조직한 지

2년 뒤인 1561년 왜구가 또다시 침공해 온 거야.

무려 1만여명이었지.

 

 

 

 

 

 

 

  왜구1.jpg

 

 

 

그리고 한달이 넘는 왜구와의 접전 끝에

척가군은 5천명 이상의 왜구를 잡아죽이는

어마어마한 성과를 보였어ㅎㄷㄷ

 

 

소나무 숲 사이에 매복해 있다가 불시에
습격해 왜구들을 전멸시킨 적도 있었고
무엇보다도 왜구를 해안가 쪽으로 계속
몰아넣고 ㅁㅈㅎ 시켜버린 거지.


5천이상의 사망자 중에 전투로 인한 사망은 
1천4백여명이고 무려 4천여명이 물에 빠져 죽은 거야.

 

이 전공은 척계광이 심혈을 기울여 구상한 
왜구토벌작전이 그의 계획대로 나무랄데없이
훌륭히 기능했음을 보여줘.

 

과거 명나라수비군은 진지에 주둔하고 있다가 
왜구가 출몰했다는 보고를 들으면 군대를 
끌고 가는 식이었기 때문에 왜구를 번번이
놓치기 일쑤였어. 이 때문에 척계광도 초반에 
허탕친 적이 있었지.

 

허나 소나무숲에서의 기습에서 보이듯
척계광은 왜구의 예상 이동로를 파악해 
미리 매복하는 작전으로 보다 적극적인 공격에
나선거야. 물론 아직 척계광의 존재조차 몰랐던
왜구였기에 기존의 띵나라 군대들만 생각하고 
방심한 탓도 있겠지만 소부대로 나뉘어 닥치는대로 
돌아다니는 왜구의 이동로를 미리 파악했다는 건 
척계광이 척후병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한발 먼저 
나섰다는 걸 알 수 있지.
 
또한 한달이 넘는 기간동안 사방에서 왜구들을
요격해 마침내 해안가에 있는 그들의 본거지로까지 
몰아넣었다는 건 척가군역시 여러 부대로 나뉘어 
쉬지않고 끊질기게 왜구들을 쫓았다는 걸 보여줘.

 


이를 위해 척계광은 도넛처럼 가운데에 
구멍을 뚫은 떡을 만들어 병사들의 목에
걸고 행군하면서 먹도록 했다고 해.  
진지에 대기하고 있다가 부랴부랴 달려가는
기존의 대항방식을 버리고 밥먹을 시간조차 아끼면서 
찰거머리처럼 끝까지 추격하도록 한 거지.

 

 

사실 원앙진에는 이미 이렇게 상황에 따라 
부대를 여럿으로 나눠 유연하게 운용하기 위한 
대비도 되어 있었어.

원앙진을 보면 무기파트마다 복수로 배치되어있지?
덕분에 원앙진1팀은 상황에 따라 다시 2팀으로
나뉠 수 있었어.

 

왜구들은 보통 명나라군대와 싸울 때면 산비탈길 위로
올라가던가 좁은 길목으로 유인해서 명나라가 숫적우위를
활용하지 못하게 했기 때문에 (또한 그들의 뛰어들어 내려치기가
보다 효과를 발휘하게 하기 위해) 실제로는 난전이 되는
경우가 많았어. 게다가 이렇게 좁은 곳에서의 전투는 병사들이
패닉에 빠지게 하기에도 쉬웠지.

 

 

때문에 척계광은 유사시 대장의 지휘에 따라
원앙진 한팀이 다시 반으로 나뉘어 각각 왜구를 한놈씩 상대할 수
있게 한 거야.

 

덕분에 왜구의 급습을 받는 상황에서도 병사들이 
우리 팀은 아직 무너지지 않았다!는 심리적 안정감을 느껴 쉽게 
와해되지 않게 하는 효과도 있었지.

 

 

거기에 기존의 명나라군과는 다르게 아무리 길가에 재물을 뿌려도

눈하나 까딱 안하고 추격해오는 척가군의 모습에 이 번에는 왜구가

멘붕에 빠졌어. 지금까지 이런 부대는 전국시대 일본에서도 본 적이

없었으니까;;

 

 

 척가군1.jpg

 

 

 


척계광과 척가군의 등장으로 판도는 
일순간에 뒤집어졌어.
 
천재지변 앞에 선 인간들 처럼 그저 무기력하게
떨어야했던 백성들이 느꼈을 놀라움은 형언할 수 없을 정도였겠지.

 


다음 해인 1562년 왜구가 다시 쳐들어 왔어.

지난 해에 척가군에게 대패한 왜구는 이 번엔 
절강성 밑의 복건성지역까지 동시에 쳐들어 왔지.

 

 

 절강성.png

 

 

 복건성.png

 

광동성.png

  

<절강성 복건성 광동성>

 

 

 

 

 

 

이번에도 척가군은 목에 걸린 떡을 뜯어먹으며 
밤낮으로 끈질기게 왜구를 쫓아다녔고 
이 후 약2년의 싸움 끝에 이들을 모조리 격파해 
수천명을 죽이고 60여개의 진지를 초토화시켜버렸어. 
어떤 때는 한 달 동안 12번이나 이긴 적도 있었어.
어떤 통계에 의하면 총 80번을 싸워 80승을 했다고 해;;;

 

 

 

한 번은 척계광이 왜구들의 진지를 
초토화 시킨 뒤 "지금까지 노무노무 
고생 많았다!! 이제 본거지도 ㅁㅈㅎ 시켰으니 
당분간 척가군은 휴가다!!"
라고 선언했어. 이 소식을 들은 왜구들은 
이틈에 마지막으로 한탕 크게 하고 재빨리 
일본으로 돌아가려고 했지만 척계광은 병사들을 
몰래 배치해 왜구들이 숨어있다가 나오는 족족 
다 잡아죽였다네ㅋ

 

 

 

 

왜구침입.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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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구 침입로>

 

 

 

 

 

이렇게 왜구를 물리치기 위해 불철주야 뛰어다닌 척계광과 척가군의
노력덕분에 1564년을 끝으로 왜구는 이제 중국에서 자취를 감춰버렸어.

사람들은 척계광과 그의 부대를 과거 송나라의 전설적인 
명장 악비의 군대처럼 '척가군'이라고 부르며 칭송했지.

 

 

 

 

 해전.png

 

 


 

 

 

이처럼 지략도 뛰어나고 전술도 잘 짜고

카리스마도 강한 척계광 덕분에
중국해안은 평화를 되찾게 되었어.

 
척계광 역시 자신이 존경하던 악비장군과
같은 찬양을 받아 가슴이 벅찼을거야.
악비장군과 악가군은 중국에서 무인을 꿈꾸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흠모하는 전설적인
존재들이었으니까. 척계광도 어린시절부터
악비장군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듣고 자랐지.
 

 

 

 

척계광의 왜구토벌은 정말 많은 점을
시사해준다고 생각해.

사실 중국은 예로부터 병사들의 사병화를
막기 위해 장수도 자주 바꾸고 부대도 자주
이동시키는 정책을 썼거든.

이런 때에 특수부대를 조직해 자기가 창안해낸
특이한 전술과 무기로 훈련시킨다는 건 자칫
큰 오해를 살 수 있는 위험천만한 행동이었지.

허나 척계광은 왜구토벌이라는 가장 큰 목적을
위해 개인적인 곤경을 무릅쓰며 대대적인 혁신을
시도한 거야.

또한 병사개개인에 대한 인간적인 이해가 부족했던
다른 장수들과 달리 척계광은 진심으로 
병사들 하나하나와 왜구토벌이라는 공통의 목표를 
공유하기 위해 고심했어.

일게이말투로 썼지만 척계광이 병사들에게 했던 말은
실제로 그가 한 말들이야. 
엣헴엣헴 하며 대의와 충성 군인으로서의 사명감만 
다그치던 귀족들이 병사들에게 저런 말을 할 수 있었을까?
사실 사람들은 저런 고상한 이상보다는 직접적인 
이익을 더 선호한다는 걸 귀족들이라고 몰랐을 리는 없어.
허나 그들은 이 걸 '천박하다'며 용인하려 하지 않았지.
씹선비질 ㅍㅌㅊ?
 


척계광이 매력적인 건 이걸 인정하고 
적극적으로 반영했다는 거지.

 

암튼 척계광의 성공신화는  
단 한 명의 노력이 얼마나 놀라운 기적을
만들어낼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사례가 아닐까 싶어. 오래된 생각이다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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