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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

몽고에 대항한 장군

과정 2017. 10. 31. 09:47

요즘 맨날 똑같은 일베내용 땜시 씹노잼을 외치는 게이들을 위하여

 

심심풀이 정보글을 올려보려고해.

 

p.s 전에 일본 무장관련해서 글 올렸다가 일뽕주화 쳐먹고 많이 반성했다.

 

게다가 내가 올린 글은 중복자료였음(심지어 내 자료가 훨씬 더 부족했다 ㄷㄷ).

 

진심 몰랐다. 그래서 그 자료 찾고나서 글삭제했다. 미안하다 게이들아

 

담에는 중복확인 더 철저히 해서 글 올릴게.

 

 

 

 

 

 

 

 징기.jpg

 

 

자 그럼 시작해볼게. 몽고 제국이 세계의 절반 이상을 차지할 만큼 강대국이었던 사실은  국사책을

 

한번이라도 읽어봤으면 대부분을 알고 있는 사실일거야. 또한 그 근원지와 그리 멀지 않은 한국과 그외 아시아

 

국가들은  그 위력을 직접 실감해야했지. 압도적인 기동력을 앞세운 몽고기병은 백병전을 기반으로 두었던

 

중세 전쟁 방식을 기동력 기반의 전투 형태로 변화 시킬 정도로 큰 센세이션을 일으켰어.

 

 (몽고제국이 동양 제패후 서양 진격시 백형들이 초토화 된 것도 이러한 시대적 흐름을 따라가지 못한것에 기인한게 커.)

 

그렇다고 아시아 국가들이 몽고기병한테 쳐발리기만 한 것이 아니야.  그럼 이제 시작해볼게.

 

 

 

 

 

우선 "그럼 그때 우리나라는 뭐했냐 이거야" 할 게이들을 위해 고려부터 달린다.

 

 

 

 

한국 (고려)

 

 

 김경손.jpg

 

 

김경손 장군 (고려 최후의 영웅)

 

 

이미지는 구하기 힘들어서 삼국지 덕후들이 만든 이미지를 빌려왔어.

 

김경손은 평장사(平章事) 김태서의 아들로써 나름 명문가 출신의 장군이야.

 

1231년 몽고군이 압록강을 건너 철주(지금의 평안북도 철산군)을 초토화시키고

 

정주까지 쳐들어 내려온 적이 있어. 이때 김경손 장군은 불행이도 몽고군에게 패하고 말았어.

 

그런데 패하고 끝날거였으면 내가 여기 글 올리지도 않았을 거야.

 

김경손 장군은 7일간의 도주 끝에 귀주성에 당도해서 병마사 박서와 함께 재차 항쟁을 준비해.

 

250명의 군사로 1만이 넘는 몽고군을 막아야하는 상황으로만으로 사기가 꺽일텐데, 게다가

 

이미 한번 대패를 당한지라 사기는 안봐도 뻔하지.

 

그때 김경손 장군은

 

"너희는 나라를 위하여 몸도 돌보지 않고 죽어도 물러나지 않을 자들이다"

 

하고 병사들을 독려하지만, 병사들의 좌절만 더 커져갔지. 

 

김경손 장군은 이에 굴하지 않고, 12명의 결사대를 만들고

 

그들과 함께 몽고군에게 돌격! 그리고 적지 한 가운데서 적장을 활로 저격하고 (저격게이 ㅍㅌㅊ?)

 

12명 모두와 함께 무사귀환하는 대활약을 펼치지.

 

이에 고려병사들은 사기를 회복하여 결사 항쟁을 준비하게 되지.

 

 

 

 투석.jpg

 

 

 

귀주성에서 항쟁이 시작되자 몽고군은 귀주성을 포위하고 '투석기'를 이용하여 총공세를 펴게되. (아, 쓰다보니 이석기 생각난다. 일베 중독 ㅍㅌㅊ?)

 

근데 몽고군이 존나 씹잔인한게 돌에다 기름을 발라 화염투석을 했어. 게다가 그 기름이 고려백성들과 포로들의 몸에서 짜낸 기름이었지(소오금~)

 

이때 김경손 장군은 투석에 맞아 죽을뻔 하기도 했어. 이에 부장들은 김경손 장군에게 피할 것을 권하였으나,

 

김경손 장군은 "안될일. 내가 움직이면 민심은 흔들릴 것이다." 하며 최전선에서 항전을 진두지휘해.

 

이렇게 1개월의 항쟁이 계속되자, 겨울이 오고 몽고군은 퇴각하게되.

 

그런데 여기서 주모 불러야 겠어. (부르기 전부터 취하노~)

 

이때 김경손이 상대한 몽고군 총사령관이 누군지 아는 게이있냐? 바로 [수부타이]이야.

 

수부타이가 누구야 하면, 칭기즈칸의 절대적 심복 '사준'(네마리의 사냥개) 중 최고의 맹장으로 불리던 사람이야.(이때 그의  나이 70)

 

칭기스칸의 옆에서 몽고의 부흥을 이끌었던 1등공신이였지.

 

수부타이는 물러나면서 이런말을 했다고해.

 

"어린시절부터 종군하여, 천하를 두루다니면서 수많은 성곽과 해자에서 싸우고 공격하는 모습을 보았으나 이러한 공격을 당하고도

 

항복하지 않는 자는 처음 보았구나. 성중의 제장들. 훗날 반드시 장상이 될것이다."

 

라는 말을 남겼다고해.

 

이렇게 대활약을 펼친 김경손을 출세가도는 예약된거 아니노? 천만해!

 

너무 능력이 뛰어나면 오히려  처단해야 하는 대상이 되는건 예나 지금이나 비슷하지.

 

자~ 이제 일베에서 빠지면 섭한단어가 튀어나와. [전.라.도]

 

1237년 전라도에서 백제를 부흥한다면서 폭동이 일어나. (까보전은 과학입니다.)

 

당시 최씨 정권은 커자가는 김경손의 세를 쳐내기위해 김경손 장군에게 이를 토벌하라는 명을 내려.

 

근데 여기서 반전 하나!

 

김경손에게 토벌군 몇명이 주어졌을거 같노? 게이들아.

 

김경손 1명이야. 즉, 가서 노짱따라가라는 거지.

 

게다가 이때 최씨정권은 김경손의 군함 20척을 분해하여 격구장을 만들고 백성 2,000명을 동원해 궁궐 증측을 시행했어.

 

(이쯤되면 막가자는 겁니까?)

 

그러나 몽고에서도 인정한 명장 김경손은 지역민들을 모아 의병군을 조직하고 이를 진압해버리는 ㅆㅅㅌㅊ 전공을 올려.

 

최씨 정권에서는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지.

 

하지만 결국 1251년 최항이 정권을 잡고 김경손을 잡아다가 수장시켜버렸어.

 

그 당시 몽고군에게 대항할 최후의 영웅은 이렇게 어의없게 생을 마감해.

 

이 후 1270년에 김통정이 삼별초 항쟁을 주도하였지만, 이미 국운은 너무 기울어버린 상태였지.

 

이렇게 고려는 완전한 몽고의 속국이 되어버렷어. 

 

(p.s 아, 맞다. 위에서 설명 안하고 깜빡한게 있는데 최씨정권=무신정권이다. 왕권이라고 오해 ㄴㄴ해.)

 

 

 

 

 

 

다음으로는 대륙이야 :)

 

 

 

 

 

 

중국 (금)

 

 

 완안.png

 

 완안진화상 (몽고제국이 두려워한 남자)

 

 

완안진화상은 금나라 출신 장군 걸가의 아들이야. (걸가는 남송과의 전쟁에서 노짱따라감)

 

완안진화상은 20세에 고향인 풍주에 몽고군이 쳐들와서 포로가 되어버리지.

 

하지만 완안진화상의 비범한 능력을 알아챈 몽고군이 그를 전격 스카웃해가지.

 

후에 몽고군의 일원으로써 북방을 평장할때 큰 공을 세운 그였으나, 몽고군의 한족에 가한 피박을 참지못해

 

풍주의 감독관(몽고인)을 살해하고 사촌형과 함께 금나라로 도주해.

 

몽고군이 중국 본토를 침략해오자 완안진화상은 위구르, 나이만, 강, 한인등 몽골의 지배를 피해 금으로 도망친 망명자들을 모아

 

 충효군이라 이름 붙여진 군단을 만들어서 몽고군을 괴롭히기 시작해.

 

게릴라성 공격으로 깔짝되던 완안진화상은 1228년에 드디어 자신이 역사에 기록되게되는

 

대승을 이끌어내는데 400여기의 기병으로 8000명의 몽고기병을 '전멸' 시켜버린거야.

 

 

 

 전투.jpg

 

금나라가 20년 넘게 몽고에 대항하면서 얻은 첫승이자 가장 큰 승리야.

 

(완안진화상이 활약할때 금나라는 이미 초토화되었기 때문에 완안진화상은 금나라 독립항쟁이라는 큰 개념에서 이해해주길 바래

 

물론 금나라가 완전히 먹힌건 아닌 상태였지만 쓰러지기 일보 직전이었지.)

 

완안진화상은 공적으로 정원대장군 평량부판관(定遠大將軍、平涼府判官)의 자리를 받고 일약 천하의 용명을 떨쳐 멸망 직전의 금을 구한 영웅이 되었어.

 

이 승리를 발판삼아 섬서 지방에서 연전연승을 달리게되었고, 금나라는 꺼져가는 희망을 살려가고 있었지.

 

또한 완안진화상은 1231년 도회곡의 전투에서 승리하여 어모중랑장(禦侮中郞將)에 오르며 출세가도를 달려.

 

하지만 몽고군이 가만히 있을리가 없잖아? 오고타이칸(칭기스칸의 셋째 아들)이 총사령관이 되어 대대적인 전면전을

 

선언하였고, 그에따라 완안진화상을 중심으로한 금나라 총병력 15만이 개봉 서남부에서 전투를 하게되.

 

 하지만 칭기즈칸의 손자 툴루즈의 활약으로  패배...

 

포로가 되어버리지. 그리고 몽고제국의 중심부에서 대대적인 재판이 시작되 (물론 사형확정된 상태였지만)

 

하지만 마지막 순간에도 당당한 태도로 일관하여 오고타이칸이 그의 기개에 감탄을 연발하였다고해.

 

끝은 사형당해서 노짱 따라감.

 

 

 

 

 

 

 

다음으로 동남아 :)

 

 

 

 

 

 

베트남

 

 

 

 

진흥도.jpg  

 

 

 

진흥도 (베트남의 이순신)

 

 

휴... 앞에서 계속 쓰다보니 몽고군에게 계속 지노. ㅜㅡ

 

그렇다면 이제 몽고군에게 '완전한 승리'를 거둔 진흥도 장군에 대해서 알아보자.

 

동아시아를 끔살시킨 몽고군이 실질적으로 유일하게 정복하지 '못한' 나라가 베트남이라는 것에

 

모두 놀랄거야.

 

[일본은 신풍(태풍)으로 인해 종속되지 않은거고

 

서아시아는 바투가 차가타이 한국을 건설하면서 그 정복 루트가 유럽으로 향해서 무사했던야 (그와중에 반은 먹힘), 

 

인도같은 경우는 신의 개시로 인해 정복을 '안'한거라고 봐야해 ; <ㅡ-쿠빌라이칸이 인도 초토화중에 꿈속에 시바(유니콘으로 나왔다고 하는 설도 있고)가 나타나

 

서 원정을 중지하라해서 몽고군이 물러났다고함. 물론 믿거나 말거나지만 이렇게 나와있더라] 

 

진흥도는 무려 쿠빌라이칸의 주력 군세를 3차례에 걸쳐 무려 50만의 몽고기병을 막아냈어.

 

자, 그럼 이제부터 제대로 진흥도 장군을 알아볼까?

 

진흥도는 무려 배트남 쩐(진)왕조의 황자 출신이야. 부유하게 컸지.

 

진흥도와 원(몽고제국)의 관계가 시작된 것은 쿠빌라이칸이 남송을 치키 위해 홍수의 강의 통과 허락을 요구하면서 부터야.

 

대부분의 영웅들이 그렇듯이 단번에 거절해 버리지.

 

쿠빌라이칸은 남쪽에 듣보잡 국이 이런 행동을 취하자 당연히 빡치지 않겠노?

 

그래서 바로 어택땅! 근데 진흥도가 이끄는 베트남군한테 ㅁㅈㅎ

 

진흥도 장군은 [병서요략]이라는 전술서를 기술할 정도로 병법에 능통해 있었기에 가능한 거였지.

 

후에 몽고제국은 1282년 2차 쩐왕조 토벌군을 만들고 30만이 넘는 대규모 병력을 출병시켜.

 

아무리 진흥도일지라고 긴장 않할수 없잖아? 하지만 진흥도는 상대를 정확하게 보고 자신들의 장점을 극대화 시킬줄 아는 장군이었지.

 

전면전으로는 승산이 없다고 판단한 진흥도는 열대의 지형을 이용하여 끈임없이 게릴라 작적을 펼쳐.

 

당시의 몽고군은 기병과 중국의 투석기나 화포등이 주력이었기때문에 베트남의 기후와 지형에 불리하다는 것을 간파하고

 

이를 이용해 몽고군을 철저히 파괴해버려.

 

몽고제국도 대패를 통해 베트남을 정복하는 것은 힘들다고 판다, 남송을 압박해 베트남에게 항복을 요구하게 되지.

 

물론 진흥도는 "싸우려하지 않고 항복하려 한다면 나의 목을 내놓겠다."하며 베트남 정권의 결사항쟁을 촉구했지.

 

오히려 자신들과 원수지간이였던 참파라는 국가를 설득해 연합전선을 구축하고 몽고를 더욱 압박해 버려.

 

결국에 몽고제국은 철수를 선택할 수 밖에 없었고, 쩐왕조(베트남)은 독립을 유지할수 있었어.

 

 

 

 동상.jpg

 

 

1300년 71세의 나이로 진흥도 장군이 노짱 따라가고, 베트남 구국 영웅으로써 아직도 베트남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로 추앙받고 있어.

 

미국과의 베트남전에서 진흥도의 병서요략이 베트콩의 주력 전략으로 사용되었을 정도로 진흥도의 전술능력은

 

시대를 몇백년 앞서 갔다고 볼수 있어.

 

 

 

 

 

 

 

 

이미지출처: 네이버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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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줄요약

 

1. 몽고가 미쳐 날뛰었어도

2. 다른 국가들이

3. 맨날 진건 아니야 ㅠ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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